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 텃밭 구도가 확립된 것은 1987년 제 13대 대선 때였다. 1노(盧)3(金)의 구도는 지역맹주 중심의 지역주의 정당체제를 그대로 반영한 구도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지역간 경제격차와 박탈감도 지역감정 격화의 배경이었다. 그러나 김영삼ㆍ김대중 즉 양김의 분열이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선 결과에서 그 실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평민당 김대중 후보는 호남에서 86.2%를 얻었지만 영남에선 5.0%밖에 못 얻었다. 영남에서 41.6%를 얻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는 호남에선 1.1% 득표에 그쳤다.
■ 망국적인 지역대립 구도는 4개월 뒤 치러진 1988년 13대 총선에서 한층 더 굳어졌다. 부산의 15개 선거구 중 14개를 통일민주당이 차지했고, 대구 8개 선거구는 민정당이, 광주의 5개 선거구는 평민당이, 대전의 4개 선거구는 신민주공화당이 각각 싹쓸이를 했다. 텃밭에서는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된다는 비아냥이 당시의 지역주의 실상을 한마디로 압축했다. 지역맹주의 무소불위의 권력 행사와 사당화 등 정당정치 왜곡의 폐해도 컸다. 그렇게 맹위를 떨쳤던 지역주의 정당체제는 3김씨의 퇴장과 함께 점차 완화되는 추세에 접어들었다.
■ 민주당이 만년 텃밭으로 여기는 광주에서 구청장 재보선 패배의 쓴맛을 본 것도 그런 추세의 반영일지 모른다. 민주당으로선 무소속 후보에게 당선을 내줬고, 비민주 야4당 단일후보에게도 큰 표차로 밀려 3위에 그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텃밭에서 이렇게 흔들리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야권연대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데도 문제가 생긴다. 취임 한 달도 안돼 10ㆍ27 재보선 지휘에 나선 손학규 대표도 리더십에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자신과 유시민 국민참여당 정책연구원장의 대리전 양상을 띠었다는 점도 손 대표에겐 부담이다.
■ 그러나 텃밭에서의 패배가 민주당과 손 대표에게 반드시 불리하기만 할까. 어차피 호남에 지역적 연고가 없는 손 대표가 과거 DJ처럼 지역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텃밭 장악력 약화에 따른 지역주의 완화는 다른 지역에서 '산토끼'들을 불러들일 수 있는 여지를 키운다. 민주당이 그토록 소망하던 전국 정당화에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광주 서구청장 선거의 민주당 패배가 지역주의의 볼모였던 우리의 정당정치에 새로운 장을 예고하는 상징적 사건이라는 해석이 결코 과장만은 아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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