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첫 걸음(first step)일 뿐이다.”
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총재 회의 성과에 대한 손성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의 평가다. “이것으로 환율 전쟁이 종식될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낙관적 진단과는 온도 차가 적지 않다. 그래서 그는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에서 구체적 합의사항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세계적인 이코노미스트 손 교수와의 인터뷰는 경주 회의 전후 면담과 전화,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 경주 회의로 환율 전쟁이 큰 고비를 넘겼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동의하시나요.
“예전에도 선진 7개국(G7) 등을 통해서 이런 합의는 있었지만, 곧 흐지부지됐어요. 만나서는 원칙적인 합의를 해놓고, 돌아가서는 국내 사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난 경주 회의는 환율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첫 걸음 정도로만 봅니다. 이것만 가지고 문제 해결이 되는 건 절대 아니지요. 다음 단계로 11월 서울 정상회의에서 세부 실천방안에 대해 합의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환율 갈등을 그만큼 풀기 어려운 숙제로 보시는 군요.
“그렇습니다. 미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수출을 늘려야 되는 절박한 처지이지요. 중국도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수출을 포기할 수는 없구요. 절상을 하더라도 천천히 오랫동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달러화 약세에 이에 연동된 위안화가 동반 약세를 보이면, 다른 국가 통화는 절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요. 국가간에 이런 첨예한 이해관계가 쉽게 해소될 수 있을까요.”
- 그렇다면, G20 체제를 통해서 할 수 있는 뭐가 있나요.
“사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 압력에 굴복해 위안화 절상 등에 나서는 건 정치적 부담이 큽니다. 미국과의 양자 협상이 아니라 이번 경주 G20 회의에서 다자 협상을 통해 ‘시장 결정적 환율제 이행’ 등에 동의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봐야 합니다. 앞으로도 G20 체제는 이런 공동 압력(peer pressure)을 넣는데 유용한 체제가 될 겁니다. 그 과정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을 적극 활용해야겠지요.”
-경주 합의에는 경쟁적인 평가 절하를 하지 않기로 하는 내용이 담겼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런 합의가 없었더라도, 의장국인 한국은 외환시장에 개입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시장개입을 안 하면 우리만 손해보는 것 아닌가요.
“시장 개입은 장기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좋지 않습니다. 최근 일본 정부가 대규모로 시장에 개입했지만, 잠시 절하되는 듯한 엔화 가치는 금세 다시 절상됐지요.. 아예 중국처럼 계속 환율을 묶어두겠다는 거면 모르겠지만, 정부가 어설프게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건 장기적으로 볼 때 효과도 없습니다.”
- 최근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비판하더군요.
“일본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들도 환율을 높이기 위해서 대규모로 시장 개입을 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해외에서 보는 한국 외환당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외국인들은 한국 정부의 힘이 굉장히 강해서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거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에 자주 개입해 왔기 때문에 굳어진 인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개입을 하지 않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고 봅니다.”
- 한국 정부는 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을 막기 위한 장치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자본 유출입을 통제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외국인 자금의 변동성이 심한 것 역시 한국경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탓이지요. 만약 외국인 자금에 세금을 더 부과한다든지, 강력한 규제를 한다든지 하면 신뢰가 더 떨어질 겁니다.”
- 미국 경제 얘기를 해보죠. 더블딥(이중 침체)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더블딥 가능성은 낮아요. 미국 정부가 양적 완화와 함께 연말 종료되는 세금감면을 연장하는 등 경기부양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할 겁니다. 게다가 이미 미국 경제와 주택시장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을 정도의 바닥 상태에 있어요. 다만 더블딥보다 더 우려되는 것이 (일본식의)‘잃어버린 10년’입니다. 경기가 급락하지는 않지만 디플레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좀처럼 헤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 한국 경제는 가파른 회복세를 지속해 왔는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어렵다고 봅니다. 한국경제 자체는 잘 되고 있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지 않습니까. 세계경제가 큰 바다라면 한국 경제는 배 한 척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배가 튼튼하다고 해도 바다에 쓰나미가 생기면 버틸 수 없지요.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거시정책을 펴야 될 겁니다.”
- 마지막으로 이번 서울 G20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제언을 한다면요.
“앞선 런던이나 토론토 때와 차별성 있는 결과를 내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경주 회의에서 첫 ?습?내디딘 환율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방법론을 내놓아야 해요. 또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필요하겠지요. 그래야 G7 아닌 국가에서 회의를 개최한 의미가 있을 겁니다. 또 하나, 재계 모임인 비즈니스 서밋이 활성화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어쩌면 각국 정부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봐요.”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사진=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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