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휴일 엄마 산소에 다녀왔다. 아이 감기가 아직 낫지 않아 왕복 4∼5시간 차로 이동하고 밖에 오래 있어야 하는 게 좀 무리 아닐까 싶었는데, 강행했다. 올 추석 때 미처 성묘를 못 간 터라 더 추워지기 전에 얼른 한번 다녀와야지 싶었다. 성묘 마치고 집에 오니 오후 4시쯤. 낮잠시간을 놓친 아이가 칭얼대길래 “엄마랑 목욕탕 갈까” 물었다. 물장난 좋아하는 아이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목욕탕 다녀와 저녁을 치킨으로 해결하고 부랴부랴 차로 시댁으로 이동했다. 이른 아침부터 온종일 쉴 틈 없는 하루였다.
그날 밤 자정이 다돼 눈이 떠졌다. 아이가 심상치 않았다. 쌔액쌔액 하고 가쁜 숨을 쉬는 아이 이마에 손을 대니 불덩이였다. 열을 재보니 40도. 얼른 아이를 일으켜 해열제를 먹이고 옷을 벗겼다. 싫다고 우는 걸 달래가며 미지근한 물에 적신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줬다.
하지만 해열제를 먹인지 1시간이 다 되도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아이는 계속 엄마 품으로 파고들었다. 감기 끝물이라 진한 코가 목으로 넘어가면서 안 그래도 숨 쉬기 불편한데 고열까지 나니 더 힘들어했다. 몸을 떨며 잠도 못 드는 아이 옆에 누워 괜찮아, 괜찮아 하며 배랑 등을 계속 쓸어줬다. 후회가 밀려왔다. 좀 춥더라도 성묘를 아이 감기 떨어지면 갈걸. 성묘 다녀온 뒤 목욕탕 가지 말고 그냥 집에서 재울걸. 내가 좀 피곤하더라도 치킨 말고 밥을 해줄걸. 마음이 아팠다. 마치 내가 앓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이 직접 고통을 경험하지 않아도 아파하는 다른 사람을 보면서 간접적으로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우리 뇌에 공감능력을 관장하는 특별한 신경망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볼 때 뇌 영상을 찍으면 이 신경망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걸 관찰할 수 있다. 이런 공감반응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과 이를 보는 사람 간 친밀도가 높을 때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게 동물실험으로 최근 확인됐다.
신경과학자들이 공감 신경망에 주목하는 이유는 사이코패스가 대부분 공감능력에 장애를 보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니 양심의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은 채 범죄를 저지르고 남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공감 신경망을 회복시키면 사이코패스도 치료될 수 있을 거란 추측이 가능하다.
아이 몸을 쓸어주다 깜빡 졸았다. 새벽 3시쯤 화들짝 깼다. 숨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고 잠이 든 듯했다. 열도 많이 내렸다. 조심조심 옷을 입히고 물수건이랑 약을 정리한 다음 다시 아이 옆에 누웠다. 엄마가 된 뒤로 공감 신경망의 존재를 실감한다. 아이가 아프면, 나도 아프니 말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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