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 인도주의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1년 2개월 만에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이 27일 성과 없이 종료됐다. 상봉 정례화를 대가로 금강산관광 재개 및 대규모 대북 지원을 해달라는 북측 요구안을 놓고 양측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날 속개된 회담에서 북측은 전날 밝힌 인도주의 협력 사안의 세부 내용을 ‘쌀 50만톤 및 비료 30만톤 지원’으로 못박았다. 이 정도 규모는 차관 형태의 대북 식량 지원이 정기적으로 이뤄졌던 과거와 비교해도 연간 최대치에 해당한다. 회담 관계자는 “북측은 전날에 이어 이날 전체회의에서도 쌀 50만톤과 비료 30만톤 지원에 대한 남측의 입장을 일관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북측은 정부 차원의 대규모 대북 지원과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를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연계하겠다는 방침도 거듭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북측 대표단은 (남측이) 쌀ㆍ비료를 제공하면 이산가족 문제를 풀어갈 수 있고, 상봉 정례화를 위해 금강산 장소 문제를 논의할 실무회담도 빨리 열려야 한다는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고 전했다.
북측 대표단장인 최성익 조선적십자회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을 통해 “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라며 남측을 압박했다. 그러나 우리 대표단은 “대규모 식량 지원은 인도주의 범주를 벗어난 것으로 적십자회담이 아닌 당국 차원에서 검토할 사안”이라며 북측의 제안을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대북 식량 지원 문제는 남북관계 상황과 북한의 사정, 국민 정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은 일단 내달 25일 적십자회담을 다시 열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를 비롯해 북측이 요구한 쌀ㆍ비료 지원 문제 등을 논의키로 합의하고, 회담 장소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을 통해 추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남측 대표단 수석대표인 김용현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이번 회담에서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알았기 때문에 당국이 결정할 것은 당국이 하고 적십자사는 이산가족 문제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측이 적십자회담과 대북 지원의 성격을 둘러싸고 근본적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는 만큼 차기 회담에서도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개성=공동취재단ㆍ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