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까지 나왔지만 시골에서 아버지 농사를 돕는 노총각 시인 선호(김영필)는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상처 받고 외로운 사람을 위해 부르는 노래"라며 시를 쓰지만 주변에서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술 취한 그가 자신의 집 개 앞에서 시를 읊는데 개조차 까무룩 고개를 처박고 잠이 든다). 완고한 아버지는 오직 소만 애지중지하며 재래식 농사법을 고수하고, 친척들은 "베트남 여자 500만원" 운운하며 국제결혼을 강권한다.
어느 날 새벽 선호는 홧김에 소를 끌고 나와 우시장에 내다팔려고 하나 여의치 않다. 이도 저도 못하고 방황하는 선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와 결혼한 옛 연인 현수(공효진)로부터 "남편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예상치 않았던 방랑에 나선다. 그 정처 없는 선호의 여행은 구도의 과정이기도 하고, 구애의 한 형식이기도 하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제목이 암시하듯 불교에 맞닿아 있다. 선호가 여행 중에 만나는 정체불명의 스님과 그 스님이 기거하는 절 '맙소사', 소 타기를 즐기는 소년 등이 등장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강조한다. 젊은 시절 상처만 안겨준 사랑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답답한 현실의 근원이 무엇인지 선호가 인식하게 되는 과정도 불교의 수행과 다를 바 없다. 동자와 소의 관계를 통해 불교의 깨달음을 설법하는 심우도가 자연스레 오버랩된다.
종교를 매개로 사랑의 감정을 전하고 삶에 대한 의문에 답하려 하지만 화법은 대중적이다. 술에 취한 뒤 격정을 이기지 못한 선호와 현수가 서로의 몸을 더듬다가 다시 서로를 밀쳐내는 장면 등은 처연하기보다 유쾌하다. "난 네가 정말 싫다" "나도 네가 밉다. 바보 같은 XX야"라며 말다툼하는 선호와 현수의 모습은 로맨틱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지만 소의 호연도 눈길을 끈다. 마치 사람의 감정에 즉각 반응하는 듯한 '연기'를 보여준다. '천군'과 '혈의 누', '음란서생'에도 출연했다는데 소도 출연작이 많으면 연기실력이 느는 것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등을 연출한 임순례 감독 작품. 11월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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