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많은 종교가 상호간의 차이로 인한 테러나 폭력, 차별 없이 공존하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 종교 갈등으로 인한 전쟁과 테러가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는 것과는 정반대다.
우리나라 종교인들은 상대 종교의 다름을 인정한다. 상대 종교의 교리와 영역을 존중한다. 그것은 농경사회 중심의 단일 민족 국가에 외래 종교가 정착하는 과정에서도 서로 포용했던 우리 종교의 오랜 전통이다. 그 전통은 지금도 이어져 종교 지도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화를 통해 상호 이해해야 갈등을 줄이고 화합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상대 종교를 탐구하고 이해하려는 인적ㆍ학문적 교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타 종교에 대한 맹목적 배타주의, 현실 이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늘 문제다. 최근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서울 삼성동 봉은사 경내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올리고 불교를 우상숭배라고 말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해 파문을 일으킨 것이 대표적이다. 기독교계 내부에서는 1990년대 이후 선교를 '영적 전쟁'으로 보는 경향이 고조돼 왔다. 즉 해외로 선교를 나가면 해당 지역이 어떤 종교권이든 상관없이 그곳의 악한 영을 물리치고 영적 승리를 획득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봉은사 '땅밟기 기도'사태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원천부터 부정하고 자신의 종교만 절대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이기주의다. 그러고도 사랑과 용서를 말한다는 것은 위선이다. 독단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는 반목과 갈등, 적대감만 부추길 뿐이다. 우리 종교계의 전통적인 화합의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 다행히 동영상 제작 신자들이 어제 봉은사를 방문해 사과하고 봉은사 측도 이를 받아들인 만큼 이번 사태가 종교계 화합을 다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근본적으로는 종교계가 현실의 이익에 얽매여 상호 반목ㆍ질시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팔공산 불교테마공원 조성, KTX '울산역(통도사)'병기 논란 등으로 촉발된 종교간 공방은 낯뜨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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