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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나무를 모르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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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나무를 모르는 나무

입력
2010.10.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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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희

바람이 몹시 분다.

이름도 모르는 벌판에서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았다.

저 멀리 벌판 끝으로

눈물이 가득 들어찬 눈동자들이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반짝반짝 글썽인다.

여기는 어디일까.

나무는 생각하는 법도 모르면서

제목도 모르는 책 앞에서 턱을 괸다.

위층 어딘가에서

웅얼웅얼 아기를 달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곧 익숙해질 거야.

살아서 잠드는 일에 대해

살아서 깨어나는 일에 대해

이름도 모르는 벌판의 낯선 태양과

살아서 마주치는 일에 대해.

바람이 몹시 분다.

바람이 뭔지도 모르면서

두려움 없이 바람 소리를 듣는다.

나무가 뭔지도 모르면서

나무로 살아온 것처럼.

눈동자들은 벌판의 끝으로 굴러가 있고

눈물의 의미도 모르면서 자꾸만

반짝반짝 글썽인다.

● 이제 겨울이 찾아오면 북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올 테죠. 그 바람은 시베리아 산이에요. 그 땅의 풍토를 닮아 건조하고 차갑죠. 그 바람이 우리집 앞까지 찾아오는 건 모두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을 향해 23.4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왜 기울어졌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보낸 하루도 있었어요. 혜성과 충돌한 흔적이라는 설도 있지만, 자세한 건 알 수 없죠. 어쨌든 반듯하면 보기도 좋을 텐데, 지구는 약간 기울어졌어요. 그래서 계절은 바뀌죠. 계절이 바뀌어서 차가운 바람이 불면 우리는 좀 외로워지기도 하고 그래서 연애도 하고, 또 결혼도 하죠. 지구가 왜 기울어졌는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덕분에 우린 울고 웃네요. 그러고 보면 이 바람도 대단하지 않나요? 글쎄, 시베리아에서 왔다니까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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