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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개발과 문화재-마간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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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칼럼] 개발과 문화재-마간을 추억하며

입력
2010.10.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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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서울 변경의 사투리인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 나와 내 형제들은 원당 살던 이모를 온데이 이모라고 불렀다. 내 형제들의 발음이 유독 어눌해서가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그렇게 불렀다. 온데이 이모가 놀러 왔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면 '온데이 이모 간데이' 그러면서 깔깔거렸던 기억이 있다. 무악재 살던 이모는 막작고개 이모라 불렀고, 공덕동 살던 고모는 공디기 고모였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큰고모는 현저동, 당시의 서대문 형무소 근처에 사셨다. 우리는 그 고모를 마간 고모라고 불렀다. 나는 오랫동안 마간이 혹시 마굿간의 변형된 말이 아닐까 오해했었다.

모화관 언저리 삶의 기록

마간이 모화관의 변형된 말이라는 짐작을 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나는 독립문 근처에서 유년과 소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모화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모화관이 중국 사신들을 맞이하여 왕세자 이하 문무백관들이 굴욕적인 재배를 올렸던 곳이라는 사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려서 한국사를 가르쳤던 선생님들이 치욕적인 역사의 기록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가고 싶어 하셨거나, 내가 수업시간에 딴전을 피웠거나 둘 중의 하나였겠다. 모화관이 독립관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모화관의 문이 있던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이 세워진 것이 1896년의 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독립문을 세우기는 하였으되 나라의 영광이 요원하여 그 후로도 참담한 역사의 세월이 오래 지속되었다.

사정이 어쨌거나, 내게 마간은 그냥 마간이었다. 큰고모가 돌아가신 후에는 더는 부를 일이 없어 자연히 현저동이 되어버렸지만, 1980년대 말까지도 마간은 그냥 마간이었다. 모화관을 이름으로 남겨 추억하는 것이 무슨 즐거운 일일 수 있으랴. 그러나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은 단순히 그 지명에 남아있는 기록뿐만 아니라, 그 기록과 함께 하는 시대이다. 마간은 모화관이었지만, 모화관으로 상징되는 모든 것뿐만 아니라, 그 모화관의 언저리에서 살고 죽어갔던 보통사람들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알고 있거나 알고 있지 않거나, 위대하거나 위대하지 않거나 그렇다.

내 큰고모인 마간 고모가 살던 집터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서대문형무소도 사라져 독립공원이 조성되었고 그 주변으로는 서울 어디에나 그런 것처럼 아파트들이 세워졌다. 아파트의 이름 중 마간 아파트는 당연히 없다. 그 이름이 남아있다면 독립공원이 더 독립공원 같겠다 가끔 생각해볼 따름이다. 사라지는 것이 이름뿐이겠는가 마는 어쩌면 가장 오래 남는 것이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모화관은 사라졌으나 마간이라는 이름이 남아, 치욕이든 영광이든 추억을 남겼다.

4대강 개발을 하면서 문화재 조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개발 아니면 죽을 것 같이 외쳐대던 70년대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추억하는 것에 대해 말했지만, 문화재는 단순히 추억이 아니라 거대한 재산이다. 개발된 후 남겨져도 좋을 것이 아니라 개발의 기반이 되어야 할 역사다. 돈 생기면 다시 사들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름과 역사 무조건 살려야

중국 베이징이 개발되던 1960년대에 중국의 한 건축학자는 베이징을 그대로 살려두고 다른 곳에 신도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50년 후에 당신들은 이 일을 톡톡히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4대강 개발의 문화재 침해 사실에 대해서 문화재청에서는 기준에 맞는 모든 조사를 다 했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문화재를 살리는 일에 기준이 어디 있나. 무조건 살리고 볼일이다. 이름만 남아 추억하는 게 아니라, 이름과 역사를 모두 끌어안고 함께 가야 할 일이다. 개발은 그 후의 일이다.

김인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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