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 무대를 지켜봐온 연극 평론가 구희서(71)씨가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사회ㆍ정치ㆍ문화 등 각 분야로 나눠 수여하는 제 15회 비추미여성대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구히서’라는 필명으로 훨씬 친숙한 구씨가 이병복, 백성희씨 이후 연극으로는 세 번째 수상자다. “한국 연극 저널리즘을 개척한 산 증인”이라고 시상자 측은 선정 이유를 밝혔다.
“최근 작품들 중 좋았던 거요?”구씨는 이내 수첩을 펼치고, 짚어가며 답했다. “반의 ‘침묵파티’, 미추의 ‘맥베스’, 멕시코의 ‘아마릴로’, 그루지야의 인형극 ‘파우스트’, 76의 ‘3cm’ 등이 괜찮았어요. 러시아의 ‘폭풍’은 3시간짜리인데 재미있게 봤어요.” 평론가라기보다 기자에 가깝다. “(연극) 구경 다니느라 정신 없다. 한꺼번에 전 세계 일류급 단체가 모였으니 일단 반갑다” “아첨하기 위해 변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보고 기록”한 자의 자부가 묻어난다.
그는 “순수한 것을 보면 기분 좋다. 나쁜 연극을 봐도 좋다”고 했다. 강단 비평 쪽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말이다. 연극이란 장르의 순수성에 대해 말했다. 그의 마음에 와 닿은 무대는 “난폭, 섹스 없이 깊은 감정을 미묘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는 “영상, 짓거리가 과한 것은 싫다”며 “내 시대의 미적 기준이 좋다”고 했다. ‘매체를 동원하지 않은, 인간 예술로서의 연극’을 말한다. 탈매체의 인본주의라니, 얼마나 반시대적인가.
1996년 연극판의 터줏대감들이 모여 만든‘히서 연극상’은 연극인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상으로 꼽힌다. 염혜란, 남명렬 등 14회까지의 수상자들은 개성 있고도 진솔한 연기로 객석에 깊은 인상을 심어준 ‘무대 위의 얼굴’(이 말은 구씨가 우리나라의 대표적 배우들을 인터뷰하고 쓴 책 제목이기도 하다)들이다.
‘히서’의 ‘히’는 그가 번역한 소설책에 오기된 역자 이름이 굳은 것이다. 그는 실수를 방임했고, 이제는 공식적 고유 명사가 됐다.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고정시켜 또 다른 기록물로 고정시키는 자신의 운명이 담겨져 있다.
“나이 들면서, 이런 잣대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히서연극상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문화기획자 강준혁씨의 메타 와인 파티에서 경매를 벌여 생긴 수익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상은 제도를 거부하는 풀뿌리 문화의 전범이기도 하다. 그와 친분 있는 문화 예술인들이 1년에 두 번 모여 집단평의회 식으로 수상자를 결정한다.
잘 아는 어느 한의사가 그를 두고 “철갑을 두른 여인”이라 했다. 그는 “이제 철갑까지 녹슬었다”고 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더 왕성한 현역이다. 연출가, 무대예술가들의 인터넷 카페인 ‘우자트’(이집트의 종교적 상징)에서 3년째 하고 있는 고문 일은 그를 녹슬지 않게 하는 것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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