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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국 이웃사촌들과 '다문화 주택'에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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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국 이웃사촌들과 '다문화 주택'에 살아요"

입력
2010.10.26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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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산격2동의 백서영(10ㆍ북대구초4)양은 외국인과 한 지붕 아래 산다. 단독주택 2층은 백양 가족이, 월세를 놓은 1층(두 세대)엔 시골에서 이사 온 아저씨와 베트남 부인, 일자리를 찾아온 중국인 등이 3년 전부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서로 말이 통할 리 없어 초인종 소리에 백양이 “누구세요”라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고(아마 대답을 못했고), 백양 역시 중국인 아저씨가 행여 말을 건넬까 봐 늘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그러나 서로 어색한 눈길을 맞추는 날이 잦아지고 음식을 나누면서 시나브로 이웃사촌이 돼버렸다. “생활방식이 비슷해서 말하는 거 빼면 이제 외국인과 한 집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때가 더 많아요.”

외국인 이웃과 더불어 간직한 일화도 많다. 백양은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온 이웃과 한 지붕 아래 살며 겪은 재미난 일들을 글로 엮어 우정사업본부가 주최한 ‘2010 다문화사회 글짓기 공모전’에 냈다. 제목은 ‘다세대주택이 아니라 다문화주택’, 뜻하지 않게 초등학생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글(수상작)과 말(백양과의 통화)을 통해 백양의 일상다반사를 살펴봤다.

현관문만 열어 놓으면 중국인들이 얘기하는 게 들린다. 우리 말과 다른 낯선 언어가 신기해 귀를 쫑긋 세웠다. “‘슐라슐라’ 리듬을 타지만 어떨 땐 말소리가 정말 빠르고 커 싸우는 것처럼 들려요. 경상도 사람들이 얘기하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싸우는 줄 알고 겁먹는다는데 중국말도 똑같아요.”

지난해 추석 때 일만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20대 중국인 오누이에게 전 나물 탕 등 음식을 갖다 줬더니 몇 시간 후에 만두와 빵, 계란 국을 담아 가져왔다. 김이 모락모락 먹음직스러워 한입 베어 문 순간, 바로 내려놓고 말았다. “고맙긴 한데 짜고, 이상한 향이 나서 못 먹겠어요. 음식모양도 나눠주려는 마음은 비슷한데 양념이 다른가 봐요. 혹시 그분들도 우리가 준 음식이 입에 안 맞아 먹느라 고생했을 거라 생각이 들었어요.”

소소한 일상에서 소녀는 자못 나름대로의 교훈과 배려를 터득한 셈이다.

낯선 외모와 달리 닮은 점을 하나씩 발견하면서 알게 모르게 정이 들었다. 공장이 문을 닫아 다른 일자를 찾아 떠나는 중국 언니를 보내야 했을 땐 섭섭했고, 베트남 아주머니가 작은 아파트를 얻어 이사할 때는 기뻤다. 백양은 “다른 건 몰라도 매우 부지런히 일하는 모습은 본받아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수상소감을 묻자 백양은 엉뚱한 답을 했다. “이제 인사를 잘해 ‘이층 집 딸은 인사도 잘하는 밝은 아이네’라는 칭찬을 듣고 싶어요.” 소녀는 자신의 글이 인정받는 것보다 외국인 이웃에게 더 잘 보이고 싶은가 보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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