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과 정부가 중장기적인 전방위 엔고(高) 대비 태세에 돌입했다. 지난 주 경주 주요 20개국 재무장관 회의에서 각국이 환율절하경쟁을 피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엔화 가치가 사상 최고 수준인 달러당 80엔대로 오르며 나홀로 상승을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메이저 전기전자업체 도시바(東芝) 사사키 노리오(佐佐木則夫) 사장은 25일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 주최 ‘세계경영자회의’에서 달러당 70엔에도 견딜 수 있는 “‘프로젝트 70’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매출, 생산, 조달의 해외 비중 최적화가 목적”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바는 단기적으로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활용하거나 현지 조달을 늘리고 중장기로는 실적이 좋은 분야에 집중해 사업구조를 재편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 도입 전인 2009년도 상반기에는 엔화가 1엔 오르면 8억엔 영업손실이던 것이 올해 상반기에는 7억엔 영업이익 구조로 바뀌었다. 신흥국 매출비중은 2009년도 24%에서 2012년도에는 31%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도요타자동차는 회계기준 환율을 현재 달러당 90엔에서 2010년도 하반기에는 달러당 80엔으로 낮추기로 했다. 이에 따른 환차손만 1,500억엔 규모다. 이 같이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피하기 위해 도요타는 지난 주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의 태국 생산계획을 밝히는 등 5년전 48% 수준이던 해외생산 비중을 올해는 57%까지 높일 방침이다.
태국 생산 소형차 ‘마치’를 최근 일본에 역수입하는 등 생산거점 이전에 적극적인 닛산(日産)자동차는 지난해 66%이던 해외생산비중이 올해는 71%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카를로스 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업은 해외에 더 많은 제품을 소싱하는 방식으로 엔화 가치 상승에 적응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TV사업부문에서 6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소니는 해외생산 확대에 힘입어 올해 2분기에는 소폭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 연도 해외생산 비중이 20% 수준인 소니는 올해는 이를 50%까지 대폭 높일 계획이다.
지난 달 달러당 82엔대가 깨지자 외환시장에 개입했던 일본 정부도 종합적인 엔고 대책에 착수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26일 각료회의를 열어 엔고와 디플레에 대처하기 위해 5조900억엔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실시키로 결정했다. 이번 주 내 국회에 제출할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은 공공근로사업 조기 시행과 고용 대책 강화 등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엔고로 일본 기업이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내수를 진작하고 기업환경을 개선하며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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