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두 번에 걸쳐서 8.15 광복 자체며 그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그것만 가지고도 나는 나만의 광복의 만화경을, 이 모습, 저 모습을 제법 골똘하게 살펴 본 셈이다.
하지만, 겨우 두 번의 연재만으론 못다 한 사연이 너무나 많다. 일본 제국주의의 간악한 쇠사슬에서 풀려난 덕택으로 하필이면 부산 국제시장에서 공짜로 일본 책을 왕창 왕창 얻어 걸리게 된 그 사연, 바로 지난 번 연재에서 얘기된 그 사연만 해도 별난 일화일거라고 자부하고 싶다. 그것은 나의 광복이 내게 맛보게 해준 ‘역사의 코미디’로 따로 간직해두고 싶다.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신세를 겨우 벗어난 바로 그 순간에 하필이면 일본인들이 읽다 만 일본어로 된 책들을 노다지로 얻어 챙기고는 희희낙락하였다니, 그것은 아무래도 ‘역사의 아이러니’, 그나마 코믹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 순간 나는 난데없이 찰리 채플린 저러 가라는 스타 코미디언이 된 셈이다.
하지만 귀환동포 마중을 다룬, 네 번째 연재와 공짜로 일본 책 얻어걸리기를 한 다섯 번째 연재로, 나의 광복 이야기가 마감되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해방하고 이내 한국(그 당시 조선)을 해방시키면서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소위 미군정이 시행되었다. 그들은 우리에겐 해방의 전사(戰士)들이었다.
부산 시내를 어쩌다 그들이 트럭을 타고 자나갈 때면, 시민들은 손을 흔들고 환호했다.
우리들 중학생들로서는 해방직전까지만 해도 미국군대는 ‘귀축(鬼畜) 미영(米英)’이라고 저주해야 했다. 일본인들은 미국을 ‘美國’이라고는 쓰지 않았다. 적국의 이름에다 아름다울 미(美) 자를 붙일 턱이 없었다. 아무튼 ‘귀축 미영’이란 말은 도깨비 귀신이고 짐승만도 못한 게 미국이고 영국이란 뜻이다. 요컨대, 미국과 영국은 악마의 집단이었던 셈이다.
그래설까? 처음 미군을 보았을 때, 꽤나 무서웠다. 엄청 큰 키가 위압적이었다. 그들 군복 차림이 중뿔나 보였다. 앞뒤가 뾰족하게 내밀어진 그들의 군모(軍帽), 그 모자는 영락없이 도깨비 뿔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떻게 보아도 우리에게 자유를 선물한 해방의 천사 같지는 않았다. 그들 가까이 가는 것이 꺼려지기도 했다.
그래설까? 그들이 먼저 친근감을 나타내곤 했다. 특히 우리 소년 소녀들에게는 손 흔들면서 환히 웃는 낯으로 반기고 들었다.
“헤이, 캄온!”
그렇게 소리치곤 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 ‘캄온’은커녕, ‘헤이!’ 소리조차도 알아듣질 못했다. 그래서 주춤대는 우리에게 선물이 날아들었다. “츄잉검”이라면서 뭔가를 던져 주었지만 그게 뭔지 알아볼 턱이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것인데다 ‘츄잉검’이란 말도 못 알아들었다.
일제시대에 일본식으로 배운 영어로는 그들 미군 병사의 발음은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지스 이즈 아 보이”
“자트 이즈 아 가루”
그 따위로 소리 내어 읽고는 ‘이건 소년이다’, ‘저건 소녀다’ 라고 영어 선생은 풀이하여 주었다. 그런 일본 식 영어가 귀에 익고 보니, 진짜 미국인의 영어는 무슨 개구리 울음 같았을 뿐이다.
아무튼 정체불명의 그 ‘츄잉검’이라는 걸, 손에 받아 들고는 만지작댈 뿐, 우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게 딱했던지, 우리에게 미국 병사는 본을 보였다. 종이 껍질을 벗겨선 알맹이를 입에 물고는 씹어댔다.
우리는 그 흉내를 냈다. 생전 처음으로 씹어 보는 ‘츄잉검’, 달콤새콤했다. 훗날, 껌이라고 부르게 된, 그 먹을거리는 그 당장으로서는 정말이지 이상했다. 씹히기만 할 뿐, 조각이 나거나 가루가 나거나 하지 않는 채로 입안에 또는 이에 달라붙기만 하는 게 요상했다.
“뭐 이 따위가 다 있어? 미군들은 별 걸 다 먹고 있네.”
그렇게 투덜대면서 우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와트 이즈 디스?”
일본 식 발음으로 우리는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엉터리 영어가 그나마 통했던지 그 병사는 꾸역꾸역 씹기만 하는 것임을 그의 입질로 가르쳐 주었다. 계속 씹어대기만 하는 걸로 그걸 눈치 채게 해주었다. 입으로 씹다가 목 넘어서 삼키는 시늉을 짓고서는 손을 가로 저어 보이기도 했다. 고개도 설레설레, 내저었다.
“무슨 놈의 먹을거리이기에 삼키지도 못하다니, 그것도 먹을거리야?”
그렇게 반문 하면서 여전히 뜨악해 있는 우리에게 그는 한 수 더 떠서 가르침을 주었다. ‘츄잉검’을 몇 번 씹는가 싶더니 그걸 올려놓은 그의 혀끝을 입 바깥으로 쑥 내밀어 보였다. 씹고는 내밀고 내밀다 말고는 다시 또 씹어대는 그 묘한 입질을 두어 차례 되풀이해 보였다. 그러다가는 혀 끝에 동글동글 작은 풍선을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참 신기했다. 그것은 그의 완벽한 연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서야 그 ‘츄잉검’인지 뭔지 하는 것의 정체를 알아 낼 수 있었다. 우리도 그 병사가 한 그대로 씹다 만 ?遲陋匣??혀끝에 올려서는 입 밖으로 내밀어 보였다.
“굿!”
그러면서 그는 미처 풍선은 못 만들어 내는, 우리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그것은 내 최초의 ‘한미 친선’이었다. 껌 씹기의 그 묘한 인연은 오늘날에도 미국을 생각할 적마다 내 머리에 떠오르곤 한다. 껌만큼 질기고 끈질기다.
그 훨씬 뒤, 몇 차례 장기로 미국에 머물면서 엮게 된, 두터운 인연도 ‘츄잉검’ 씹기의 연장이다시피 했다. 체류하는 동안, 내가 즐겨 껌 아닌, ‘츄잉검’을 씹어댄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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