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에 따라 쓰는 도구도 다르기 마련이다. 낫은 벼나 풀을 베는데 적합하고, 도끼나 톱으론 나무를 베어야 한다. 최근 영화계의 화두가 된 3D 기술은 어느 장르에 가장 잘 들어맞는 도구일까. 아마도 볼거리를 내세운 영화들이 3D 기술을 알차게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역대 최고 흥행작 ‘아바타’가 3D 열풍의 주역이 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 바통을 이어받은 사실은 3D 기술의 제대로 된 사용처가 어디인지 말없이 역설한다.
한국 최초의 3D 영화인 ‘나탈리’는 ‘이모션 3D 멜로’라는 알쏭달쏭한 장르를 표방한다. 사람의 감정까지 입체적으로 표현해 전달하는 사랑이야기라는 설명이 뒤따르지만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이야기는 지극히 평면적이고, 인물들의 감정은 2차원도 아닌 1차원에 머물기 때문이다.
‘나탈리’도 여러 3D 공상과학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정서적 울림보다 볼거리를 앞세운다. 공상과학영화 등이 화려한 영상화법으로 눈을 희롱한다면, 이 영화는 낯뜨거운 볼거리로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제작사의 주장과 달리 멜로라기보단 에로다(사실 멜로에 굳이 돈 들여 3D 기술을 사용하는 건 압정을 박는데 대형 망치를 휘두르는 꼴이 아닐까).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살색이 아닌 ‘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미란(박현진)의 젖가슴이 관객의 동공을 찌르는 순간 당혹감을 감추기 어렵다. 작심한 듯 침실 장면들이 이어지고 여배우의 체모도 몇 차례 등장한다. 3D 기술을 한껏 활용하려는 듯 카메라의 위치도 남다르다. 카메라는 남녀의 감정을 탐색하기보다 몸을 훑는데 주력한다.
이야기도 침실 장면의 등장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수준이다. 유명 조각가 준혁(이성재)과, 그의 필생의 역작 ‘나탈리’의 모델이 됐던 여인 미란, 미란에게 순정한 사랑을 바치는 민우(김지훈)의 애정관계가 침실 장면의 배경으로 활용된다. “세상은 다부다처제로 변하고 있어”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논하자는 것인가” 등 심각한 척하는 대사가 등장하지만 시답잖다.
농밀한 사랑의 감정이 그저 적나라한 노출만으로 이뤄지지 않음을 잘 보여주는 영화. 영화 속에 나오는 문구 “널 갖고 싶어”만큼 영화가 전하는 정서는 직설적이고 단순하고 유치하다. ‘동승’의 주경중 감독. 28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