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삶과 문화] 우리가 본 바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우리가 본 바다

입력
2010.10.25 12:05
0 0

아주 어렸을 때에는 기자가 되고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 때의 나는 아마도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얼마간 환상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환상의 주변에는 진실, 공익, 용기, 헌신 등과 같은 단어들이 포진해 있었을 것이다. 이 단어들은 '기자 정신'이라는 말로 얼추 묶인다. 전장을 누비며 사진을 찍은 로버트 카파의 이름을 따서 카파이즘(Capaism)이라고도 한다던가. 기자가 되지 못했지만 이 말들은 지금도 나를 설레게 한다. 지금도 대다수의 훌륭한 기자들은 카파이즘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인터넷 공간이 열리면서 많은 언론매체들이 생겨났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수십 개의 기사가 일제히 올라온다. 그런 기사들에서 가장 지겹게 등장하는 단어는 '논란'이고, 목마르게 찾아도 보이지 않는 단어는 '진실'이다.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보도하는 것도 기자의 일이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는 것은 태만일 수 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그 이상이다. 당사자에게 논란은 거의 전쟁이다. 전장을 누비면서 피 흘리는 진실을 찾아내 부축하는 것이 위대한 기자의 일이 아닌가.

하물며 책상머리에 앉아 논란을 중계방송하면서 이를 확대재생산하고, 그것으로 독자를 유인해 언론사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는 이들이 자신을 기자라고 부르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논란 배달부' 정도가 적당해 보인다. 그들이 경악할 만한 무책임함으로 '논란 사업'을 하는 동안, 논란의 대상이 된 사람의 영혼은 누더기가 된다. 논란이 논란으로 보도되는 순간, 어떤 의미에서 논란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그저 논란의 당사자로만 기억될 것이다. 진실은 늘 너무 늦게 도착하고 그 때까지 현장을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일단은 판단을 유보해야 하고, 풍문의 진위를 주체적으로 가려야 하며, 타인을 매도하는 은밀한 쾌락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은 꽤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반면에 오해는 얼마나 간편하고 쾌적한가. 우리는 가장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결론에 끌린다. 그러니 언론만 탓할 일도 아닌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늘 하고 있는 일이니까.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자신은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고 믿으면서 우리는 자주 위로 받는다.

"아무도 바라보지 않을 때/ 바다는 그 바다가 아니지./ 아무도 우리를 지켜보지 않을 때/ 우리는 그런 바다가 되네./ 그 바다는 다른 물고기들,/ 다른 파도들 또한 갖고 있지./ 그것은 바다를 위한 바다./ 그리고 여기서 내가 하듯 바다를 꿈꾸는/ 그런 사람을 위한 바다." 우루과이 태생의 프랑스 시인 쥘 쉬페르비엘(1884~1960)의 시 '비밀스러운 바다'의 전문이다. 현실과 시를 대조하는 일이 때로 고상하고 허망해 보인다는 것을 알지만, 함께 읽고 싶어 옮겨 적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다는 우리가 본 바다일 뿐이다.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때, 그러니까 바다가 오로지 "바다를 위한 바다"일 때, 그 안에는 또 얼마나 많은 "다른 물고기들, 다른 파도들"이 있는 것인가. 그런 바다를 상상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그 바다는 다른 바다가 된다. 문학은 인간이 깊은 바다라는 것을 안다. 간편한 오해가 아니라 지난한 이해가 절박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문학은 한 인간을 향해 갈 때 느리고 길고 복잡한 길을 간다. 기자 정신과 작가 정신은 이 길 어디쯤에서 만날 수도 있으리라.

신형철 문학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