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를 배우는 궁극적인 목적은 그 언어를 수단으로 그 언어의 배경이 되는 역사ㆍ문화의 정수를 받아들여 우리 것과 합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영어 교육은 수단과 목적이 뒤바뀌어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공자, 천하를 논하다> <조조통치론> <제자백가, 사상을 논하다> 등의 책을 내며 동양 고전의 현대적 해석에 진력해온 신동준(54) 21세기정경연구소장.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관중(管仲)의 정치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1999년 21세기정경연구소를 만들어 동양 고전의 정치사상을 21세기 리더십과 어떤 식으로 접맥시킬지를 주제로 꾸준한 저술활동을 해왔다. 그의 새 저서 <영문법, 정치언어학으로 분석하다> (한길사 발행)는 이런 그의 전공과 별로 상관없어 뵈는 영문법 책이다. '진행형' '완료' '조동사' 등 14개의 소제목으로 된 목차는 영문법 책의 형식인데, 내용은 영어학습용 실용서와는 거리가 멀다. 영문법의 얼개와 그 얼개가 생겨난 맥락을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언어와 비교ㆍ분석하는 교양 언어학 책에 가깝다. 영문법,> 제자백가,> 조조통치론> 공자,>
신씨가 말하는 영어 학습은 말하기와 듣기를 강조하는 요즘 '대세'와는 무관하다. 그는 "적잖은 사람들이 듣기만 잘하면 말하기는 저절로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이는 착각"이라며 "제대로 된 말하기는 독해 및 작문과 더 큰 관련을 맺고 있다"고 강조한다. 세기의 명연설로 회자되는 링컨 미국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은 불과 2분남짓한 분량이지만 무수한 원고 교정 끝에 나왔고, 뛰어난 언변의 오바마 대통령도 연설 때는 프롬프터를 사용한다는 것. 그는 따라서 독해와 작문 실력 향상을 위해 문법이라는 정공법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책을 "정치언어학, 비교언어학, 역사언어학의 관점으로 한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썼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영문법의 얼개를 설명하기 위해 독일어, 프랑스어, 러시아어는 물론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고대영어와 중세영어의 용례까지 끌어들인다.
특히 그가 문법의 형성과정을 정치ㆍ문화ㆍ역사적 맥락을 통해 설명하는 방식은 독특하다. 한국어와 중국어에 사동문이 많은 이유는 수천년에 걸친 제왕정의 역사와 밀접하다고 풀이하고, 영어와 독일어 등 인도유럽어에서 수동문이 대세를 이루는 이유는 자아중심적이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인도유럽문화와 떼놓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The cake at tea eats drily'(차 시간에 먹는 케이크는 바삭바삭하다), 'My hat blew into the river'(내 모자가 바람에 날려 개울에 떨어졌다)와 같이, 외형상 능동구문인데도 내용은 수동구문인 이른바 능수동형(能受動形)구문이 영문장으로 빈번이 쓰이는 것도 서양의 개인주의 사상과 무관치 않다고 그는 설명한다.
신씨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고 조성식 전 고려대 영문과 교수의 1,000페이지가 넘는 역작 <영문법 연구> 를 주요 참고문헌으로 삼았고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 베트남어, 몽골어까지 웬만한 언어의 문법책은 모두 섭렵했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학을 전공했지만 고교 시절부터 한학의 대가 임창순(1914~1999) 선생에게서 사서삼경과 춘추좌전 등 고전을 배운 동양 고전 전문가다. 한문을 공부하다 불경을 접하게 됐고,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게 됐으며, 불교 이해를 위해 대비되는 기독교를 탐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히브리어와 라틴어도 공부하게 됐다. "문법의 맥만 잡으면 어떤 언어든 3개월이면 현지인과 대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는 6~7개 언어로 막힘없이 대화할 수 있는 정도이고 10여 개의 외국어를 독해할 수준이라고 한다. 영문법>
영문법 책을 썼지만 그는 영어 공부뿐 아니라 다른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긴요하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학창시절인 1970~80년대에도 영어가 강조됐지만 지금처럼 미국이 슈퍼파워가 아니었기 때문에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아랍어 등 다른 외국어의 가치도 긍정됐다고 한다. 반면 요즘은 심지어 EBS 외국어강좌에서도 영어회화를 제외하고는 명맥만 남아있고, 미국식 영어의 말하기만 강조되다 보니 '아륀지 사태' 같은 어이없는 현상까지 빚어졌다고 본다. 그는 "미국식 영어만 정통이 아니라 이 역시 영어의 한 부분인 '아멩글리시'에 불과하다"며 주체적 영어 학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조영호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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