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포뮬러 원(F1) 코리아 그랑프리는 끝났지만, 대회가 남긴 여운은 ‘F1 폐인’을 만들어내고 있다. 경주장인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을 찾은 팬들은 저마다 카메라와 휴대폰에 담아 온 사진과 영상들을 곱씹으며 벌써부터 내년을 기다리고 있다. 또 TV로 보거나 다녀온 사람들의 자료를 통해 F1을 접한 이들은 내년 직접 관전을 위해 지금부터 돈을 모으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F1 코리아 그랑프리는 24일 결선 8만명을 포함해 사흘간 17만명을 전남 영암에 끌어 모으며 국내에 연착륙했다. 8만명은 국내 스포츠 사상 최다 관중 기록이다. F1을 처음 만난 대부분의 관중은 머신이 지날 때마다 일어서서 환호하면서 스피드와 굉음의 매력에 흠뻑 젖어 들었다. 그러나 화끈한 레이스에 비해 대회 운영은 전반적으로 미숙했다는 지적이 많다. 성과만큼 과제도 많은 대회였다.
비에 울고 비에 웃고
24일 내린 비는 결과적으로 조직위원회와 대회운영법인 KAVO를 웃게 했다. 비로 레이스 출발이 10분 지연되고, 또 도중에 49분이나 중단됐을 때만 해도 대회 자체가 무산될 위기였다. 싱가포르처럼 야간 레이스를 위해 만들어진 서킷이 아니라 해가 지면 도리가 없었다. 계속 늦춰질 경우 대회를 건너뛰고 바로 브라질 그랑프리로 넘어갈 판이었다.
그러나 최악을 피하기 위해 일단 레이스는 재개됐고, 시간이 흐를수록 비는 잦아들었다. 노면이 젖고 시야가 가려 어느 때보다 예측불허의 레이스가 펼쳐졌고, 24대 중 9대가 사고 등으로 탈락했다. 여느 레이스보다 추월도 많고 추돌도 많아 팬들에게는 더 좋을 수 없는 볼거리였다. 현재 F1을 공식 후원하는 국내 기업은 LG전자뿐이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한 코리아 그랑프리를 계기로 여러 기업들이 F1 마케팅에 열을 올릴 전망이다.
레이스는 최고였지만, 서킷을 빙 두르는 인도는 비 때문에 전부 진흙탕이 됐다. 서킷 안만 신경 썼지 외부는 온통 흙투성이라 비에 젖으니 속수무책이었다. 서킷 내 거점간 셔틀버스가 없어 걸어서밖에 이동할 수 없는 인파들의 신발과 옷은 전부 엉망이 되고 말았다. 간이 화장실이 얼마 없어 진흙을 닦아낼 수도 없었고, 간식거리를 살 편의시설도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1박에 30, 40만원 바가지 극성
24일 결선일. 헬기에 몸을 실은 중계팀은 서킷 진입로부터 주차장처럼 꽉 막힌 도로의 영상을 전세계에 내보냈다. 진입로가 하나밖에 없다 보니 경주장을 찾은 팬들은 사흘 내내 정체에 몸살을 앓았다.
또 안내 요원들은 담당 구역 말고는 아무것도 몰라 헤매기 일쑤였고, 주최측이 첫날 이른바 ‘자유이용권’을 뿌렸다가 둘째 날부터 이를 받지 않아 볼썽사나운 항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서킷 공사의 마감이 제대로 안된 점, 목포 시내 숙박업소들의 바가지 상혼도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들은 1박에 3, 4만원인 방을 외신 기자들에게 최대 10배까지 받고 내줬다. 시행착오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만도 하지만, 최초 대회였던 만큼 첫인상이 중요했다.
내년 코리아 그랑프리는 10월14~16일. 당장 다음달 27일부터 이틀간은 F3 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F3는 F1의 하부리그 격. 내로라하는 F1 드라이버들이 거쳐간 무대다. 초대 F1 국내 대회에서 절감한 문제점을 보완, 2016년까지 계속될 잔치를 완벽하게 준비할 중요한 기회다.
양준호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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