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 아이의 진술의 신빙성을 어느 정도나 인정될 수 있을까. 아동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남성이 2심에선 무죄로 풀려났다.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5세 여아의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고 봤던 1심과 달리, 항소심은 "믿을 수 없다"며 180도 다른 결론을 내렸다.
지난 1월 4일 오후 10시30분께, A(5)양은 복통으로 인해 경기도 덕정동에 있는 병원에 실려가 방사선과에서 X레이 촬영을 받았다. 며칠 뒤 A양은 부모와 대화 도중 "X레이를 찍을 때 의사선생님이 성기를 만지라고 했다" "손으로 만지자 성기가 꾸물꾸물 거리면서 커지는 것이 신기했다" "의사선생님이 웃고 있어 온화했다"는 취지의 말을 전했고, 아이의 말에 기겁한 부모는 당시 방사선촬영기사였던 박모(28)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양이 경찰에서 조사받은 과정 및 진술내용을 촬영한 녹화 CD를 면밀히 분석한 뒤 박씨에게 "죄질이 불량함에도 반성하는 기미가 없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아울러 박씨의 신상정보를 5년간 공개하도록 명했다.
재판부는 "경찰에서 진술녹화 당시 부모가 동석하지 않아 A양의 기억이 변형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고, 경찰도 A양에게 유도적ㆍ반복적ㆍ암시적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A양이 범인의 옷차림 등은 부정확하게 말했으나 사건 발생일과 시점, 추행부위와 방법 등 핵심 내용은 소상히 진술한 점, 아동행동진술분석전문가의 분석 결과 A양의 진술이 자발적이고 통일성을 갖췄으며 명료성 또한 높았다는 점 등을 종합할 때 피해자의 진술을 신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 이강원)는 1심과 달리 피해아동의 진술을 배척하고 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4일 밝혔다.
재판부는 우선, 5세에 불과한 아이가 남자의 성기가 발기되는 과정과 범인의 체형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묘사한 것을 보면 직접 경험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아이의 진술신빙성이 의심되는 핵심 근거로 A양이 ▦일부 유도 질문을 바탕으로 답한 것이 있었고 ▦과거의 비슷한 경험과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사건발생일로부터 사흘이나 지나 불쑥 범행을 폭로하게 된 이유가 불명확하다는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A양이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있었던 박씨의 인상착의와 달리)'의사선생님이 반팔,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말한 점에 비춰 볼 때 과거 다른 병원에서 경험한 일과 혼동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A양은 2008년 4월부터 약 1년 6개월간 병ㆍ의원은 57번, 약국은 54번 다녀간 기록이 있었다.
재판부는 또 "A양을 조사한 경찰의 일부 질문은 박씨가 성추행을 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 유도질문이었다"며 "따라서 이에 따른 A양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A양이 극히 이례적 경험을 했다면 사건 당일 부모에게 말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움에도 며칠이 지나서야 피해상황을 설명했고, 당시 A양이 부모의 반복적ㆍ암시적 질문에 영향을 받아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