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500대 기업(이하 포춘코리아500)은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전년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냈지만 생산성 지표는 나빠졌다. 포춘코리아와 서울대 경영연구소가 포춘코리아500을 분석한 결과 이들 500대 기업의 지난해 자산 1원당 매출액은 1.1원에서 1.0원으로, 순자산 1원당 매출액은 3.8원에서 3.3원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을 보여주는 간접적 지표인 매출액대비 당기순이익률, 자기자본이익률 등은 소폭 올랐지만, 이는 사실상 환율 등 외부변수 덕분인 것으로 분석됐다.
500대 기업이 2009년 올린 매출은 2,245조5,217억원으로 전년보다 3.7% 줄었지만, 당기순이익(63조6,527억 원)은 36.2%나 늘었다. 기업들이 경기침체로 제품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수출도 부진했지만 금융위기에 맞서 내실경영에 초점을 맞춘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수출 대기업의 경우 환율 덕을 톡톡히 보았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지난해 원달러 평균환율은 1,276.40원으로 2008년보다 15.7% 평가절하됐다. 국내 상장기업 손익분기점을 이루는 환율이 1,113원(2009년 2분기 기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09년 환율 환경이 500대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 지렛대 역할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올해 포춘코리아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가장 눈에 띠는 대목은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들의 대약진이다. 현대차(3위), 기아차(16위), 현대모비스(29위)의 매출 순위가 지난해보다 각각 3, 9, 9계단 뛰어오르면서 500대 리스트의 최상위권에 포진했다.
최근 검찰수사로 주목을 받고 있는 태광그룹 계열 흥국생명은 지난해 128위에서 올해 76위로 1년 사이에 52계단 상승해 500대 기업 중 순위가 가장 많이 오른 기업 중 하나로 기록됐다.
올해 포춘코리아500의 문턱은 더 높아졌다. 500위 턱걸이를 한 오리엔탈정공의 매출액은 4,965억원으로 지난해 꼴찌(쉬핑랜드)보다 219억 원 많았다.
지난해 포춘코리아500에 들어있던 60개 기업이 이번에 탈락하고 그 자리를 다른 60개 기업이 차고 들어와 전체 500개 기업 중 1년 사이에 12%가 교체됨으로써 한국 경제의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포춘코리아500 기업은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500대 기업 중 상장(또는 등록)회사는 319개 사로, 이 가운데 80.8%인 258개 사의 주가가 작년 한해 동안 크게 올랐다. 이들 기업 주가는 2009년 초~2009년 말 평균 100.8% 올라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49.7%)과 코스닥지수 상승률(54.7%)을 2배 가량 앞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최대 경제 화두 중 하나였던 녹색성장 관련 기업들이 포춘코리아500 리스트에서 주요 비중을 차지했다. 500대 기업 중 정부기관에서 녹색인증을 받은 기업은 30개로, 이들 대부분이 200위 안에 안착했다. 친환경에서 신성장동력을 찾는 녹색기업들이 대체로 경영성과가 좋았다는 방증이다.
올해 포춘코리아500 무대에 데뷔한 60개 기업 중 전주페이퍼(385위), 드림리츠(390위), 일레븐건설(447위) 등 41개 사는 전년도에 비해 매출이 크게 증가한 덕분에 오를 수 있었고, 나머지 19개 사는 △연결감사보고서 작성 △주식시장 상장 등으로 자격조건이 갖춰졌거나 회사가 신규로 설립된 경우다. 신규설립 회사는 한국스탠다드차타드금융지주(44위), 엘지하우시스(182위), 삼성디지털이미징(193위) 등이다.
포춘코리아500의 업종별 매출 비중은 ㈜LG와 같은 지주회사가 다수 포진된 전문서비스업이 가장 컸다. 지주회사체제로 지배구조를 바꾸는 기업이 늘어남에 따라 이 업종으로 분류된 기업들의 전체 매출액(308조5,014억원)이 전년에 비해 4.6% 높아졌다. 수상운송업은 매출이 55.5% 감소해 기업 외형이 가장 위축된 업종으로 나타났다.
포춘코리아 500대 기업의 지난해 전체 매출은 그 해 국내총생산(명목GDP, 1,063조591억원)의 2배가 조금 넘는 규모다.
차병선기자 acha@hk.co.kr
하제헌기자 azzur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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