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회동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사진작가 김윤호(39)씨의 개인전 ‘사진전’에서는 익숙한 풍경 사진들을 만날 수 있다. 경주 남산의 소나무, 하동의 대나무숲, 제부도의 노을, 대부도의 풀숲, 동해의 암초, 안성의 저수지 등 사진 애호가 사이에서 이름난 출사지들의 모습이 모두 모였다.
김씨도 부지런히 차를 달려 남들과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었다. 대신 2대의 조명기구를 풍경 속에 집어넣고 돌이나 대나무, 풀 등 피사체의 양쪽을 비췄다. 사진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피사체 자체에 집중하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도 그냥 ‘사진전’이고, 작품 제목도 ‘돌 한 개’ ‘소나무 수십그루’ ‘풀 한 무더기’ 등이다.
김씨는 이번 작업에 대해 “사진이 아무 의미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만 정작 피사체는 뒷전이고, 그 사진을 통해 사랑이니 죽음이니 하는 감정만 말하려 합니다. 주객이 전도된 거죠. 소나무 사진에서는 꼭 한국인의 한과 끈기라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사진이라는 매체의 본질과 속성은 잊은 채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려는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아요. 돌 하나 그 자체의 모습으로도 얼마나 멋진데요.”
그 말처럼 김씨의 사진에서는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풍경 사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느껴진다. 그는 “새벽에 경주 남산에 올라갔더니 안개를 배경으로 소나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하더라”며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모습이 마치 첩보 영화나 서바이벌 게임처럼 보였다”며 웃었다. 김씨가 촬영지에서 만난 사진가 1,000명의 모습도 전시장에 걸렸다. 카메라를 들고 눕거나 엎드리는 등 온갖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뒤, 검정색 실루엣으로만 남겨 흰 바탕 위에 늘어놓은 것이다.
김씨는 그간 각기 다른 디자인의 관광버스 1,000대, 일제히 관광지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 지방자치단체들이 개최하는 각종 미인대회 등 사회 현상 속의 패턴을 찾아내는 작업을 통해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지난 3월 미국 최대 미술장터인 아모리쇼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작품이 모두 판매돼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다음에는 ‘사진전Ⅱ’라는 제목으로 사진이 아닌 회화 전시를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11월 14일까지. (02)745-1644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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