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와리야'의 종언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와리야'의 종언

입력
2010.10.24 12:07
0 0

일본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던 검찰, 그 핵심인 특수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가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의 정치자금법 위반혐의 수사에서 보인 어정쩡한 자세로 명성에 금이 가더니,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증거 조작 및 조작사실 은폐 사건은 특수부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렸다. 수사검사가 자신이 상정한 사건 개요에 맞추어 증거물인 플로피 디스크의 입력 날짜를 바꾸고, 상관들은 이 사실을 은폐하려다가 들통이 났다. 증거조작 검사와 상관 2명이 기소되고, 지휘계통의 6명이 징계를 받았다.

■ 패전 직후에 도쿄 오사카 나고야 지검에만 설치된 특수부는 모두 합쳐 50여명의 검사만 있는 작은 조직이다. 그런데도 '검찰의 꽃''초 엘리트집단'이란 명성을 얻은 것은 정ㆍ관계 수사를 전담하며 쌓은 성과 때문이다. 1954년 '조선(造船) 뇌물사건' 수사로 존재를 널리 알렸고, 76년 직전 총리를 지낸 정계 최대 거물 다나카 가쿠에이를 구속해 주가가 하늘을 찔렀다. 그 뒤로도 리크루트 사건 등으로 정계 실력자들을 잇달아 퇴진 시켰다. 최근의 오자와 수사나 증거조작 사건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화려한 전통이다.

■ 눈길을 끄는 것은 이번 증거조작 사건을 계기로 '와리야(割り屋)'논의가 부쩍 활발하다는 점이다. '와리야'를 억지로 우리말로 옮기면 '깨기꾼'이나 '쪼개기꾼'이 된다. 대(竹)를 쪼개거나 호두껍질을 깨듯, 피의자의 완강한 태도를 허물어뜨려 속마음을 밝히게 하는 신문 전문가를 가리킨다. 증거 확보가 쉽지 않은 정ㆍ관계 비리 수사일수록 '와리야'의 역할이 크다. 피의자의 심리적 허점을 파고드는 고도의 기법, 사건에 대한 입체적 통찰력이 요구된다. 뛰어난 '와리야'의 손을 거친 신문조서는 재판에서도 비교적 높은 신뢰를 받는다.

■ 얼마 전 국내에 번역 소개된 는 특수부에서 유능한 '와리야'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한탄했다. 한편으로는 검찰 신문조서에 대한 법원의 태도가 꾸준히 바뀌어 '와리야'의 역할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형사재판에서 공판중심주의 원칙이 부각되면서 법원이 조서내용보다는 법정에서의 피고인 진술을 중시하는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오사카지검 특수부의 증거조작 검사도 '와리야'의 하나였다. 이래저래 '와리야'의 종언이 다가오고 있다. 일본 검찰 특수부를 교과서로 삼아온 한국 검찰의 반응이 궁금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