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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립 30주년 맞은 실천문학 김영현 대표 "시대에 따라 문제의식도 변화…진보문학 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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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창립 30주년 맞은 실천문학 김영현 대표 "시대에 따라 문제의식도 변화…진보문학 달라져야"

입력
2010.10.24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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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의 집권으로 ‘창작과비평’ ‘문학과지성’ 등 주요 문예지가 강제 폐간되고 잡지 등록까지 불가능해졌던 1980년. 진보 문인단체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는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잡지인 무크(mookㆍ부정기 간행물)를 펴내 공론의 장을 되살리기로 한다. 이런 구상 아래 시인 고은 이시영, 소설가 박태순 이문구 송기원씨가 편집위원을 맡아 탄생시킨 잡지 ‘실천문학’은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얻었고, 이에 고무된 문인들은 같은 해 9월 잡지와 같은 이름의 출판사를 차린다. ‘실천문학’(1985년부터 계간지로 전환)과 출판사 실천문학은 이후 독재와 자본주의에 맞서며 한국 진보문학의 산실이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실천문학’이 통권 100호(2010년 겨울호), 실천문학 출판사가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언론인 박병서, 소설가 이문구 송기원, 출판인 이상 씨에 이어 1997년 제5대 대표로 취임, 14년째 실천문학을 이끌고 있는 소설가 김영현(55)씨는 1980년대부터 실천문학과 함께 해온 산증인이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실천문학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절박한 시대적 소명을 받고 탄생한 이래 실천문학이 걸어온 30년 역사는 한국문학 전체가 공유할 만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_ 실천문학의 구체적 성과는.

“시에서는 고은 신경림 김지하, 소설에서는 이호철 박완서 이문구 박태순을 위시해 수많은 작가들이 실천문학을 거쳐갔다. 이념, 세대를 가릴 것 없이 국내 작가 중 이곳을 거치지 않는 이가 드물다. 무엇보다 실천문학은 한국문학의 진보 좌파라 할 수 있는 민중문학을 대변해왔다. 특히 노동문학을 개척, 시인 김해화 김기홍 백무산 박노해, 소설가 김한수 안재성 등 주요 노동자 작가를 배출했다.”

_ 실천문학의 정체성을 위해 지켜온 경영ㆍ편집 원칙이 있는가.

“‘가난한 정신’이랄까. 구체적 수준의 합의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민중문학이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태생한 출판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출간할 책을 고르는 기준을 엄격하게 했다. 그래서 출판 범위는 좁았지만 덕분에 지금까지 타협 없이 시대정신을 지켜왔다고 자부한다.”

김 대표는 “최근 문학 출판사들의 상업주의가 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자본력 있는 출판사들이 소수의 인기 작가들을 독점하고 있다. 문학이야말로 대중이 폭넓게 향유해야 하는 것인데, 이들 출판사가 이익을 위해 작가군을 협소화시키고 문학의 탄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실천문학과 함께 진보문학 진영의 양대 출판사로 꼽히는 창작과비평사(현 창비)도 그의 날선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김 대표는 11월 출간하는 ‘실천문학’ 제100호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 30년을 일별하면서 “실천문학은 처음도 가난하였고 나중도 가난하였으며 지금도 가난하다”고 썼다. 여기서 ‘가난’은 실천문학의 운영 원칙을 비유한 말이지만, 얼마간은 현재의 경영 상황을 반영한 표현이기도 하다. 진보적 교육 잡지 ‘민중교육’을 창간한 일이 빌미가 된 ‘실천문학’ 강제 폐간(1985~88년), 오봉옥 장시집 와 정지아 장편소설 발간으로 인한 전현직 대표의 잇따른 구속(1990~91년) 등 당국의 탄압과 더불어 재정난은 오래도록 실천문학의 사정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_ 실천문학에도 도종환 시집 (1986), (2000) 등 베스트셀러를 낸 저력이 있잖나.

“그런 책들을 내고 잠시 출판사 형편이 폈던 건 사실인데, 그런 일이 잦았다면 실천문학이 원래의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제자리를 지키며 ‘안 팔리는’ 작가들에게도 마당이 돼주는 것이 우리 몫이다. 번 돈은 헛되이 까먹지 않고 잘 썼다. 송기원 사장 때는 구로노동자문학회 지원 등 노동문학을 활성화시켰고, 나는 중국 등지에 ‘김학철 항일문학비’ ‘조명희 문학비’ 등을 건립하고 ‘역사인물찾기’ 시리즈를 꾸준히 출간했다.”

_ 실천문학의 어려움을 진보문학의 쇠퇴와 결부시키기도 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진보문학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시대가 변하니 문제의식과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30년 전엔 민주화, 민중계급 부상 등 당면 과제가 명확했지만 지금은 문제가 한층 복잡해졌다. IMF 외환위기, FTA 논란 등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심화됐고, 여기에 먹을거리의 안전성을 둘러싼 밥상전쟁, 생태주의, 국제평화 등도 중요 사안이 되고 있다. 과거 방식의 진보는 끝나되, 진보는 늘 변화하며 어떤 시대에나 존재한다.”

_ 그런 관점에서도 진보문학의 퇴조는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작가정신이 그만큼 죽었다는 거다. 당대 현실과의 대결 의식을 미학적으로 성취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젊은 후배 작가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아쉽고 답답하다. 작가정신을 서로 공유해야 집단이 형성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선이 생긴다. 그걸 돕는 것이 실천문학이 앞막?해나갈 일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김주영기자 wi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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