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관심에서는 늘 멀리 있었던 아시아 국가들의 미술이 최근 조금씩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지난 10일 덕수궁미술관에서 끝난 ‘아사아 리얼리즘’전이 아시아 근대 회화의 면모를 소개한데 이어 아시아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전시들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기존에 자주 접하던 중국과 일본뿐만이 아니라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으로 그 대상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다.
‘세계 미술의 진주, 동아시아’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은 11월 4일부터 12월 5일까지 동남아시아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세계미술의 진주, 동아시아’전을 연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미얀마,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작가 17명과 한국 작가 6명의 작품 70여점을 전시한다. 1970년대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이 전시의 중심축이다.
전시를 기획한 감윤조 예술의전당 큐레이터는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태국 미술작가 겸 영화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을 비롯해 세계 미술계에서 동남아 작가들의 위상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서구중심주의에 끌려다니느라 정작 우리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했던 데 대한 자성인 동시에 동남아 작가들을 재발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이동’과 ‘다문화’다. 참여 작가들의 대부분은 출생지와 공부한 곳, 작업하는 곳이 다르고, 작품 중에도 유목민적 삶을 다룬 것들이 많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셔먼 옹의 영상 작품 ‘가뭄 속의 홍수’는 갑자기 물이 부족해진 가상의 미래를 배경으로 힌두어, 인도네시아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등 각기 다른 언어로 인터뷰하는 싱가포르 거주자들의 모습을 담았다.
필리핀 작가 아나딩 포클롱의 ‘열리기를 기다리며’는 전철역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건너편에서 찍은 스냅 사진 시리즈로, 진부한 일상 속에서도 끝없이 움직이고 이동하려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베트남 작가 텅 마이의 ‘앞으로 달리다’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설치된 자전거에 올라타면서 시작되는 인터랙티브 설치 작품이다.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 앞에 설치된 화면을 통해 청소부, 조개줍는 사람 등 평소에 우리가 지나치는 이웃들의 사진이 하나씩 나타난다.
인도네시아 작가 티타루비의 ‘비단 군대’는 190㎝ 높이의 남성 형상 30개 위에 알록달록한 여성용 양단옷감을 씌워 여성에 대한 전통적 억압과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항거를 표현한 설치 작품이고, 필리핀의 레슬리 드 차베즈는 콜라와 햄버거를 먹는 필리핀 젊은이의 모습을 화면 가득 담은 회화를 통해 필리핀인들의 정체성 문제에 질문을 던진다.
한국 작가로는 이불보 보따리를 싣고 전 세계를 떠도는 퍼포먼스를 영상에 담은 김수자씨를 비롯해 가리봉동에 거주하는 조선족 동포의 삶을 소재로 아카이브형 설치 작품을 제작한 이수영-리금홍씨 등이 참여했다. 관람료 2,000원. (02)580-1300
인도 중산충의 꿈, ‘투크랄&타그라’전
서울 소격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는 인도의 듀오 작가 투크랄&타그라(T&T)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출신인 지텐 투크랄(34)과 수미르 타그라(32)로 구성된 T&T는 회화와 조각, 패션과 제품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 인도의 면면을 담아내는 작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도 펀자브 지역 사람들의 문화를 테마로 중산층의 꿈과 욕망을 표현한 회화, 조각, 영상 등 2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은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독특하게 꾸며졌다. 벽은 온통 푸른색 체크 커튼으로 뒤덮였고, 하트 모양의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핑크색 그림 속에서는 바로크 양식의 아파트가 하늘로 끝없이 솟아오르고 있고, 뭉게구름 모양의 커다란 조각 위에 끼워진 나무 테이블에서는 찻잔과 책이 쏟아질 듯 위태롭게 균형을 잡고 있다.
T&T는 “중산층이 많이 살고 있는 펀자브 지역에서는 해외로 나가 공부나 취직을 하고, 체크무늬 교복을 입는 사립학교를 열망하며, 서양에서 유행이 지나간 바로크 풍으로 집을 꾸미는 게 유행하고 있다”면서 “인도의 상황을 비판하기보다는 삶의 변화와 계급 상승을 원하는 중산층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11월 21일까지. (02)723-6191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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