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IMF의 날(IMF Day)’이다. IMF 설립 이후 가장 중요한 개혁을 오늘 달성했다.”(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 23일 기자회견에서)
1국 1표 원칙을 채택한 다른 국제기구와 달리, 철저히 쿼터(지분)에 따른 차별이 인정되는 국제통화기금(IMF). 그런 ‘주식회사 IMF’의 지분 순위를 조정하고 이사진을 교체하는 역사적인 지배구조 개혁안이 경주에서 합의됐다. 과거에 비해 경제력 비중이 낮아진 유럽국의 순위를 낮추고, 세계경제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떠오른 신흥국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유럽 퇴조, 브릭스 약진
경주에서 거둔 가장 큰 성과는 과다 대표국(경제력 규모에 비해 쿼터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 과소 대표국(경제력에 비해 쿼터 비중이 낮은 나라)으로 6%의 쿼터를 이전하기로 한 것. 5%를 이전하기로 했던 토론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합의를 뛰어 넘은 수준이다.
쿼터가 늘어나는 수혜국을 보면, 중국의 대약진이 가장 두드러진다. 4%의 쿼터를 보유하던 중국은 6.19%를 확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쿼터 순위 3위(종전 6위)로 뛰어 오르게 된다. 인도도 2.44%이던 쿼터가 2.75%로 늘어 11위에서 8위로 순위가 오르고 14위 브라질도 10위권에 진입하게 됐다. 미국의 쿼터는 17.67%에서 16%대 후반으로 낮아지지만, 여전히 15%가 넘어 비토권(거부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IMF에서 주요 의제가 통과되려면 85%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미국, 일본, 유럽 4개국(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브릭스(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개국이 ‘톱 10’을 차지하게 된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종전 8위)와 캐나다(종전 9위)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스트로스칸 총재는 “10대 주주가 세계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10개 국가에 해당한다”며 “경제 현실을 반영하는 선두권 그룹이 됐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쿼터 순위는 18위에서 16위로 두 계단 상승했다. 1.41%이던 쿼터가 1.7% 내외로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당초 13~15위까지 도약할 수 있을 것이란 예상에 비하면,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성과다. 경제력 수준에 어울리는 적정 쿼터(2.1% 내외)를 고려하면 여전히 한국은 과소 대표국으로 분류될 전망이다.
개혁의 의미 및 IMF 역할 변화
IMF에서 쿼터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투표권 비율을 결정할 뿐 아니라, IMF 자금의 이용 권한이나 IMF가 발행하는 국제통화인 특별인출권(SDR) 분배도 쿼터에 따라 이뤄진다. 결국 이번 쿼터 개혁의 최대 수혜국인 중국은 미국, 일본, 서유럽이 주도하던 IMF에서마저 G2의 위상에 걸맞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유럽은 9개 이사석(理事席) 두 자리도 신흥국에 양보했다. 24명인 이사의 수는 그대로 유지된다. 유럽이 자발적으로 기득권을 내놓은 것은 “신흥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하게 된 변화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국제사회 요구를 계속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이번 경주 회의를 계기로 IMF의 행동 반경이 더 넓어지게 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과거 외환위기를 맞은 나라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최종 대부자 역할에 그쳤던 IMF는, G20 체제 활성화를 계기로 세계경제의 이상 징후를 포착하는 감시ㆍ예보 기능을 함께 수행해 왔다. 더구나 이번 회의에서는 환율 및 경상수지의 불균형을 평가하는 임무까지 떠맡게 돼, 국제경제 체제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국제기구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주=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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