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4개월 만에 수사를 재개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오랜 휴지기를 가졌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수사진행이 신속하고 매끄럽다. 이에 따라 수사의 중심이 임병석(49) C&그룹 회장의 개인비리에서 정치권 로비의혹으로 옮겨가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전망이다.
중수부는 C&그룹 본사와 계열사, 임 회장 자택 등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임 회장을 체포한 지 하루 만인 22일 임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근의 기업 비리수사가 통상 ‘압수수색→참고인 조사→피의자 소환(체포)’단계를 여러 날에 걸쳐 순차적으로 밟아온 점을 감안하면, 이번 수사는 이 세 단계가 이례적으로 한꺼번에 이뤄진 셈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원래 과거의 특수수사 진행이 이랬다”면서 “수사팀이 이미 상당한 기초조사를 통해 중요한 물증을 대부분 확보해 놓고 수사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이번 수사는 크게 두 가지 단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는 임 회장 개인차원의 비리혐의를 입증하는 것이다. 임 회장은 C&우방, C&상선, C&중공업 등 3개 상장 계열사를 분식회계 등을 통해 고의로 상장 폐지시키는 방법으로 1,000억원 안팎의 회삿돈을 빼내 비자금을 마련하고, 그 중 일부를 해외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임 회장은 또 대출관련 서류를 허위로 작성해 금융기관에서 1,000억원대 불법대출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중수부는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수개월간 C&그룹의 2006~2009년 비리행태를 꼼꼼하게 분석한 것으로 전해져 혐의 입증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 회장의 개인비리를 파고들다 보면 수사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정ㆍ관계 로비의혹으로 이동할 거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검찰은 C&그룹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사기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여야 유력 정치인, 고위 경제관료, 금융기관 관계자 등에게 청탁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검찰은 C&그룹이 지난 정부 시절 여러 ‘알짜기업’들을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하는 과정에서, 로비를 통해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애초 정치권에선 임 회장이 전남 영광 출신이라는 이유로 야당 정치인 3, 4명의 이름이 수사대상으로 나돌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선 이번 수사가 ‘호남 출신 옛 여권실세 죽이기’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C&그룹의 단기 압축성장이 정권실세 등의 적극적인 비호 없이 가능했겠느냐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 안팎에선 이번 수사로 소환될 정치인의 범위가 여야를 모두 포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지역에만 기반해 거론되는 연루 정치인 명단은 큰 의미가 없다”면서 “로비의혹 규명은 구체적으로 대가성이 뚜렷해야 하며, 이점에 있어선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의 지역적 배경을 넘어 큰 그림을 봐야 한다”면서 “호남기업이라는 점에 집착하면 사안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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