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궁극의 리스트' 서양문화사 전체 엮는 지식 상상력의 거미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궁극의 리스트' 서양문화사 전체 엮는 지식 상상력의 거미줄

입력
2010.10.22 12:15
0 0

움베르토 에코 지음ㆍ오숙은 옮김

열린책들 발행ㆍ408쪽ㆍ4만5,000원

감탄을 넘어 경악스럽다.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은 괴물이다. 움베르토 에코(77). 과연 그답다. 끝간 데 없이 펼쳐지는 그의 지식과 탐구욕에 다시 한번 질릴 수밖에 없다.

는 목록의 향연이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부터 20세기 팝아트 미술작가 앤디 워홀까지 문학과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목록의 역사’를 ‘목록’으로 꿰었다. 호메로스, 단테, 괴테, 제임스 조이스, 마르셀 프루스트, 월트 휘트먼 등 대가들의 문학작품 80여 편에서 펼쳐지는 각종 ‘언어적 목록’과, 그림에 담긴 ‘시각적 목록’을 서양미술사 거장들의 회화를 중심으로 195장의 도판으로 나란히 보여주는 책의 구성이 더없이 현란하고 아름답다.

장소의 목록, 사물의 목록, 그림에 담긴 목록, 신기한 것들의 목록, 컬렉션과 보물들, 매스미디어 목록 등 21개 장으로 구성한 이 책은 세상 모든 것들과 그것들의 본질에 가 닿고 싶어하는 파우스트적 욕망의 소산처럼 보인다. 에코가 수집한 목록들을 다 읽으려면 시계는 아예 잊어버리는 게 좋다. 호메로스는 에서 그리스 함대의 사령관과 함선 이름을 350행에 걸쳐 열거한다. 조이스가 에서 열거한 강 이름은 2페이지가 넘게 이어진다.

그러나 궁극은 끝내 도달할 수 없는 것. 그래서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비표준적 목록’이다. ‘일체의 논리적 질서를 모독하는’ 모순과 이단을 찬양하며, 에코는 아폴리네르의 시로 대미를 장식한다, 무한을 향한 투쟁은 ‘광대하고 이상한 영토’를 발견하겠지만 ‘오류’와 ‘죄’를 수반할 것이므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왜 목록인가. 우리는 많은 목록을 알고 있다. 일정표, 쇼핑 목록, 서지 목록, 각종 카탈로그, 전화번호부, 식당 메뉴판, 이메일 주소록, ‘기타 등등’까지. 모든 목록은 결국 기타 등등으로 끝난다. 빠짐없이 전부 열거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목록을 만드는 것은 결국 저마다의 욕망 때문이다.

에코는 목록에서 인간의 욕망과 한 시대의 세계관을 감지한다. 에코는 “문화란 그 자신의 정체성을 확신할 때에는 닫혀 있고 안정된 형태를 선호하는 반면, 뒤죽박죽 쌓여 있는 불명료한 현상들과 마주치면 목록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인의 목록은 올림푸스의 신과 영웅들을, 중세의 목록은 성인과 천사와 악마와 보물들을 끝없이 열거한다. 근대는 백과사전과 상품 카탈로그와 진기한 과학의 박물지에 열광했다. 오늘날 우리는 마침내 모든 목록들의 어머니라 할 만한 존재를 갖게 되었으니, 바로 인터넷이다.

이 책은 각 장 첫머리에 에코의 간단한 해설을 붙인 다음 각각의 주제에 맞는 언어적, 시각적 목록을 열거한다. 언어적 목록은 문학작품에서 가져온 것이 많지만, 에코가 직접 작성한 것도 있다. 예컨대 그가 만든 천사 목록의 이름은 400개가 넘는다. 시각적 목록들은 대부분 수많은 인물과 사물이 우글대는 그림들로, 화면 안에 다 넣지 못한 경계의 바깥을 상상하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에코는 시각적 목록과 언어적 목록을 세심하게 연결해 배치한다. 이를테면 토마스 만의 소설 에서 악기를 열거한 목록을 루벤스의 악기 그림 ‘청각의 알레고리’와 나란히 놓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텍스트와 이미지의 즐거운 상호작용을 만끽하게 한다.

이 책은 에코가 루브르박물관의 객원 큐레이터로 기획했던 ‘현기증 나는 목록’ 전시회가 바탕이 되었다. 목록의 무한성이 현기증의 원인이다. 뒤죽박죽 난장판처럼 흐트러진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려는 욕망은 목록 작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되지만, 목록의 목록들을 끝없이 따라가다 보면 결국 혼돈에 이르고 만다. 그럼 좌절할 것인가. 아니, 에코는 즐거운 혼돈을 즐기자고 권한다. 바로 거기서부터 비로소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히 뻗어가리니. ‘기타 등등’은 얼마나 멋진 말인가.

이 책은 한마디로 압도적이다. 각자의 지식과 상상력을 총동원해 독자는 저마다 한바탕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다. 읽다 보면 각자 자신의 목록을 만들고 싶어질 것이다. 에코가 아름답게 짜놓은 거미줄만큼 정교하고 광대할 수는 없겠지만, 꽤 근사한 작업이 될 것 같다. 마르고 닳도록 읽을 책이기도 하다. 목록에서 목록으로 종횡무진 끝없이 가지를 쳐나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독자의 목록까지 추가한다면,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에코의 글쓰기와 구성법은 하이퍼링크에 익숙한 디지털 세대라도 어지럼증을 느낄 만하다. 즐겁고 놀랍다. 브라보!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