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지의 유해성 논란으로 온 나라가 난리다. 서울시와 복지부가 자기 주장만 앞세우니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서울시 환경연구원과 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시판 중인 낙지의 먹물에 대해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리는 바람에 국민들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게다가 검찰이 서울시의 조사표본 낙지 가운데 중국산이 포함돼 있다고 밝히면서 더욱 헷갈리고 있다.
서울시 연구원과 복지부 식약청이 내린 판단은 결과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원은 낙지의 먹물과 내장이 인체에 해롭다고 발표했고, 식약청은 그 정도의 해로움은 우리 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몸에 해롭지만 적당히 먹으면 별다른 해가 없는 음식이 우리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낙지 상황을 종합해 판단하면 '낙지의 먹물 등 내장에 카드뮴 같은 몸에 해로운 중금속이 없지는 않으나 그것이 인체에 피해를 미칠 수준은 아니다' 정도의 상식으로 와 닿는다. 문제는 '낙지를 마음대로 먹어도 되느냐, 몸에 좋다는 먹물이지만 앞으로는 먹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싶은 게 우리의 마음이다.
정부기관끼리 상반된 주장 고집
오세훈 서울시장을 믿기 때문이 아니고, 진수희 복지부장관을 지지하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최근의 상황으로 인해 '낙지를 예전처럼 그냥 먹어도 된다'는 부류와 '먹을 게 낙지밖에 없나, 찜찜하니 다른 것 먹자'는 쪽으로 (낙지에 관한 한) 민심이 나뉘어지고, 이 또한 심각한 정치상황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는 데 오히려 문제의 심각성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다.
서울시가 낙지데이를 만들어 먹물을 빼내고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 데 동참하거나, 복지부 주장을 좇아 몸에 좋다고 통째로 먹거나 하면서 나름의 논리를 세우는 코미디가 유행하는 것도 그러한 반증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공업용 기름을 먹었으니 곧 수명이 단축될 것이라고 온 국민이 난리를 피웠던 '우지(牛脂) 라면 파동'과 다르지 않다. 아마 결국엔 그렇게 소멸될 터이고, 서울시와 복지부는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다. 낙지를 먹어도 그만 먹지 않아도 그만인 대다수 국민이 생각하는 바는 이만한 문제에서조차 신뢰를 심어주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미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 연구원이 낙지를 먹으면 카드뮴에 중독되어 이타이이타이병이나 골수암에 걸린다고 발표했는데, 바로 뒤 복지부 식약청은 1주일에 두어 마리 정도라면 평생 먹어도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발표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이 이러하니 그 영향이 수십 배에 달하는 생산자와 판매상들은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다 밝히지 않아서 그렇지 심각한 피해는 더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고, 복지부 외에 농림수산식품부와 국립수산과학원 등은 '새로운 진상'을 조사하고도 밝히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여당과 야당도 아니고, 정부와 시만단체도 아니고 같은 심성을 가진 한 가족인 정부기관조차 '암을 유발한다'고 발표하고, '먹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반박하며 다투고 있는데, 다른 기관들은 '유ㆍ무해에 대한 과학적 조사자료'를 갖고 있다면서 어느 쪽 편을 들기가 민망하여 침묵하고 있다니 콩가루 집안이 아닐 수 없다.
믿을 만한 '유권해석' 내려 줘야
정부가 입만 열면 '친서민'을 말하는데 낙지만큼 서민에 가까운 먹거리가 뭐 그렇게 많겠는가. 서울시와 복지부가 공동조사단을 만들려고 하나 평가의 기준과 방식이 달라서 어렵다고 한다. 해괴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농식품부와 수산과학원도 참여하게 됐으니 그 흔한 위원회 하나 잠깐만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낙지 유해성 과학적 판단을 위한 범 정부 위원회'가 될까. 올 가을에 우리는 낙지를 먹어도 되는가 안 되는가. 아니면 다리만 먹어야 하는가, 머리를 먹어도 되는가.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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