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하늘 아래서도 때로 어둠을 생각나게 하는 것이 인간사다. 연극 느와르가 나란히 등장했다. 약속이나 한 듯 대작가들의 소설에서 길어 올렸다.
극단 배관공은 알베르 카뮈의 '칼리굴라'를 들고 나왔다. 귀족을 상대로 갖가지 악행을 저지르는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게서 검은 숙명을 본다. 인간을 둘러싼 부조리 앞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카뮈의 비극적 세계관이 투영된 작품이다. 왕과 귀족들 사이의 관계 양태는 소통 단절의 극치다. 객석은 스스로는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타인은 능멸하는 칼리굴라의 악행에 대한 관찰자가 된다. 유재명 연출, 엄준필 장기훈 둥 출연. 26일~11월 21일 열린소극장.(02)555-5025
종교성 속에서 인간의 심층을 들여다본 도스토예프스키의 걸작들도 연극으로 만난다. 카뮈가 3막 22장으로 각색한 '악령'이 먼저다. 극단 피악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무대화하는 이 작품은 제목과는 정반대의 코미디로 거듭난다. 페르소나를 뒤집어 쓴 인간들은 고독과 절망 속에서 파멸해 간다. 오브제와 이미지를 적극 구사하는 연출의 힘으로 이 작품은 한 편의 씨어터 댄스를 지향한다. 나진환 연출, 지현준 권경희 등 출연. 11월 8~1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889-3561
명품극단은 지금 '죄와 벌'을 응시하고 있다. 가난한 살인자와 순결한 창녀의 이야기에는 도끼와 문, 철골 구조물만이 필요하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차는 철골 입방체에 갇힌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대로 분노와 욕망의 화신이다. 기치스 모스크바 연극예술아카데미 출신의 김원석 연출, 오경태 최영렬 등 출연. (02)3673-2003
극단 서울공장은 한ㆍ러 연출가의 공동 작업을 거쳐 '백치'를 '백치와 백지'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만들어낸다. 원작에 없는 바보 형을 추가, 한국적 바보를 러시아적 바보와 대비시켜 두 곳의 문화를 대비시킨다는 의도다. 한국과 러시아의 춤, 음악, 놀이 등 각종 볼거리가 배치돼 객석을 즐겁게 한다. 11월 17~28일 원더스페이스. 임형택, 안드레이 셸리바노프 연출. 박민호 이태경 등 출연. (02)745-0334
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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