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이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랑 놀아주어서/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지난달 26일 MBC TV 에 소개돼 화제가 된 어느 초등학교 2학년의 라는 시다. 아빠가 냉장고나 강아지만도 못한 존재가 됐다. 대한민국 아버지의 슬픈 초상이다. 억울하다. 냉장고와 먹을 것, 귀여운 강아지가 다 어디서 나왔는데. 아이라고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것만으로 아버지의 노릇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이틀 전 열세 살 중학생 소년이 한밤중에 아파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잠자고 있던 할머니와 아버지 엄마, 여동생을 모두 숨지게 했다. 소년은 춤과 사진에 관심이 많아 예술고등학교에 가고 싶은데 판검사가 되라고 강요하는 아버지, 자신을 무시하면서 걸핏하면 "공부나 하라"고 골프채로 찌르고 뺨을 때리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 아버지만 없으면 집에 평화가 올 것이라고도 생각했단다. 소년에게 아버지는 독재자요, 폭력자요, 자신의 정신과 가정 평화의 파괴자였다.'왜 있는지 모르겠다'를 넘어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였다.
■ 자녀를 노하게 하지 마라. 성서에 나오는 말이다. 이번 소년의 방화와 이전의 비슷한 성격의 사건에서 보듯 그것이 가져올 결과가 너무나 참담하고 끔찍하기 때문이다. 자녀를 노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부모의 폭력과 강요, 인격적 멸시와 냉담이다. 그런 부모에 대한 분노가 마지막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살 아니면 존속살인이다. 세상에는 자식에게 나를 강요하는 정신적 불구 아버지가 얼마나 많은가. 을 쓴 중국 수필가 펑츠카이는 그것이야말로 불구자가 건강한 자에게 똑같은 행동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길, 자신들이 속하지 못했던 사회적 지위로 자식들을 데려가려 한다. 그 길은 아이들 자신의 길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최선의 길도 아니다. 또 세상에는 길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다. 캐나다 출신 여성소설가 레이철 커스크의 소설 에서 여주인공은 말한다."사람이 살면서 부모님께 걱정 끼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부모입장에서는'걱정'이 아니라, '배반'이다. 그 배반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자녀가 노하지 않도록. 업이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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