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들숨과 날숨이 남긴 궤적이 청아한 선율로 되살아난다. 신디사이저가 컴퓨터 합성으로 흉내 낸 음향은 결코 담아낼 수 없는 인간의 흔적이 한 뼘의 악기에서 펼쳐진다. 반음 하모니카, 복음 하모니카, 단음 하모니카 등 하모니카의 다양한 세계를 보여줄 모던하모니카앙상블의 연주회다.
지난해 8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가진 청소년음악회 같은 큰 무대는 아니지만 고향 같은 숙명여대 음대 공연장인 숙연당은 언제나 푸근한 곳이다. 친숙하고도 단순한 악기로 품격있는 연주를 들려준다는 점은 우리 팀의 가장 큰 자랑이에요."정기 연주회를 앞둔 모던하모니카앙상블의 리더 최승준(64) 숙명여대 작곡과 교수는 음악의 효용성을 자기만의 별난 방식대로 실천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최 교수의 편곡 작업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모니카의 제한된 음역과 음량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힘든 '맞춤형 편곡'이다. 그는 "4대의 하모니카로 파헬벨의 '카논', 러시아 민요 '검은 눈동자' 등을 우리만큼 감칠맛나게 들려주는 연주는 세계적으로도 없다"고 자신했다.
2008년 앙상블을 창단해 하모니카의 매력을 알리는 일에 전념해온 최 교수는 지난 8월에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연주회에서 16분 30초짜리 곡 '하모니카와 피아노를 위한 세우춘래(細雨春來)'를 들려주며 하모니카가 당당한 클래식 악기라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
해외의 관련 주자들이 먼저 알아봤다. 2008년부터 그가 해오고 있는 유튜브 작업 덕이다. "초기 화면에 'zattery82'라고 치면 우리의 연주 동영상이 40여 개 떠요." 그 덕에 이스라엘의 하모니카 연주단인 애들러트리오 등과 이메일 교류가 가능했다. 지난 5월 모던하모니카앙상블이 자체 제작한 시험 음반을 들어본 그들은 "선곡, 녹음, 연주 다 좋다"는 답을 보내와 해외 진출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클래식도 대중음악도 다 아우르는 하모니카의 특성은 사람 좋아하는 최 교수의 성격과도 부합한다. 그것은 또 '마술사 교수'로 불리는 그의 모습과도 통한다. 지난해 5월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가진 '어린이날 특집 가족연주회'는 공중부양 등 그의 마술사로서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자리였다. 딱딱한 교수 모임 등의 자리에서 마술이 단번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그는 숙명여대 음대 학장 때인 2003년에는 '마술에 빠진 학장'이라는 제하로 매스컴을 타기도 했다. 내년 8월 정년퇴임 후에는 보육원, 교도소, 지방을 돌며 마술쇼를 펼칠 생각도 갖고 있다.
퓨전 가야금 연주단인 숙명가야금앙상블의 작ㆍ편곡 작업을 맡고 있는 것도 대중과 호흡하고 싶은 그의 마음의 결과다. '25현 가야금 주자 30명을 위한 합주곡'은 물론 '라틴 음악 메들리', 모차르트의 대중적 선율을 묶은'모차르트의 추억' 등 인기곡은 음반으로도 호응을 얻었다.
이번 무대에서는 미국의 탱고ㆍ블루스 하모니카 주자 조 파워스(33)도 합세, 색다른 매력을 펼쳐 보인다. "잠자리가 불편하다 해도 달려와 연주하고 싶다는 그의 모습을 보니 젊었을 적 나를 보는 것만 같네요. 그는 하모니카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음색의 왕자예요. " 이유지, 이병란 등 신예 여성 하모니카 주자들도 무대에 선다. 23일 오후 7시, 숙명여대 숙연당, 전석 무료. (03)2231-9001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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