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사건이 급증하고 있지만 피해자들이 법적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장애인 성폭력사건 쟁점 토론회'에서는 발달장애에 대한 몰이해와 가해자 중심의 수사방식, 사법기관의 안일한 인식 등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김정혜 객원변호사는 "1998~2010년의 장애여성 성폭력 범죄 261건의 판례를 분석한 결과, 유죄판결은 214건, 무죄판결 39건, 공소기각 8건으로 무죄율이 15.0%에 달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성폭력범죄처벌등에관한특례법'(성폭력 특례법) 제6조 '항거불능' 규정을 문제 삼았다. 신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을 강간이나 강제추행죄로 처벌토록 돼 있으나 ▦성관계 시 폭행ㆍ협박의 부재 ▦일반학교 졸업 등 일정 학력이 인정될 경우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지 않을 경우 등은 항거불능으로 인정받지 못해 장애여성 성폭력사건의 무죄비율을 높인다는 것이다.
민병윤 서울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장은 "항거불능 조항을 협소하게 해석해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아니라면 성폭력이 아니라는 모순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장애 자체로 항거불능 상태인 경우뿐만 아니라 장애가 원인이 돼 심리적 물리적 반항이 어려운 경우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장애인 성폭력 피해 건수는 2006년 81건에서 2009년 2,379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지만 검찰 기소율은 2009년 239건 중 93건, 올해 8월까지 186건 중 69건으로 절반에 못 미치고 있다. 젠더법연구회 정지원 판사는 "신체적ㆍ정신적 장애가 성적인 관계에서 쉽게 이용당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닌 법적 처벌이 필요한 범죄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은 이날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말하는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법무부와 사법기관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발달장애여성의 법적 구제를 위한 책임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올해 5월 곽정숙 민주노동당 의원에 이어 20일 최영희 민주당 의원이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하는 내용의 성폭력 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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