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죽이고 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희 역시 하나뿐인 딸을 너무나 살리고 싶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분의 약속을 따라 아이를 살려야 합니다."
20일 서울 동부지법의 한 법정에 선 이모(30)씨 부부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달 초 딸을 낳은 이씨 부부의 기쁨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몸무게 2.5㎏의 딸은 대동맥과 폐동맥이 모두 심장 한쪽(우심실)으로 연결되는 선천성심기형 등 심장질환을 앓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딸의 모습에 부부는 한참을 서로 부여잡고 울었다.
신생아의 목숨을 위해선 한시가 급한 수술이지만 부부의 딸은 아직 수술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여호와의증인 신도인 이씨 부부가 종교적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타인의 수혈을 거부하는 '무(無)수혈' 수술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부부는 모태신앙으로 충북 청주시에서 특별한 직업 없이 공동체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환자의 생명권을 우선시하는 병원이 법원에 이들 부부에 대해 진료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내기에 이르렀다. 신생아의 완치를 위해선 수혈이 필수라는 판단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 관계자는 "내부에서 의사와 법률고문, 윤리학 박사 등으로 꾸려진 윤리위원회가 열렸으나, 결론을 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법원의 도움을 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씨 부부의 딸은 폰탄수술(칸막이 심장교정술)을 받아야 한다. 수술은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수혈을 하면 회복가능성이 최고 50%에 이르는 반면 수혈을 하지 않는 방식(무수혈)의 회복가능성은 5%미만이다. 만약 수술을 하지 않을 시 병원이 예상하는 신생아의 생존기간은 길어야 6개월이다.
법원도 결정을 하루 미룬 채 고심을 거듭했다. 부모에겐 종교활동에 관한 글을, 병원엔 진료기록 및 회의록 등을 추가로 내도록 했다. 결국 서울 동부지법 민사21부(부장 이성철)는 21일 종교적인 신념을 이유로 갓 태어난 딸의 수혈을 거부한 부모를 상대로 병원이 낸 진료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에 대해 병원 입장을 수용해 "구명(救命)을 위해 행하는 수혈 행위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이씨 부부가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있어 (부부에게) 교리에 반하는 수혈에 대한 동의를 강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생명권은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이며 다른 기본권보다 우선돼야 할 점을 감안해 병원이 수혈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씨 부부의 딸은 수술 도중 피가 모자라면 수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병원은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수술을 진행할 계획이다.
신현호 의료전문변호사는 "종교적 신념으로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 및 가족에게 병원이 직접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한 건 국내에선 처음일 것"이라며 "외국에서는 일시적으로 친권을 정지시켜 수술 등을 진행한 사례가 있지만, 이번 경우는 수술 후 장기간 치료가 필요하고 국내에선 친권을 박탈했을 때 아동을 일시적으로 보호하는 후견인제도 등이 미비해 뾰족한 해결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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