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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무뎌진 이주호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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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무뎌진 이주호의 '칼'

입력
2010.10.2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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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교육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미셸 리 워싱턴DC 교육감이 며칠 전사퇴했다. 그가 밀었던 에이드리언 펜티 민주당 워싱턴 시장 후보가 경선에서 패하는 바람에 물러난 것이다. 현 시장인 펜티는 2006년 당선된 뒤 당시 서른 일곱살의 리를 초중고생 학력 수준이 꼴찌인 수도(首都)의 교육감으로 발탁했다. 리 교육감은 취임 하자마자 개혁의 서슬퍼런 칼을 빼들었다. 잠자던 수도의 교육에 메스를 댔다. 수백 명의 무능교사와 교직원을 해고했고 학업성적이 시원찮은 24개 학교를 폐쇄했다. 채찍이 있으면 당근도 제시하는 법. 우수 교사에겐 적지 않은 금액의 성과급을 주는 식으로 철저하게 양면 작전을 구사했다. 어쨋든 중도하차로 그의 개혁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지만 타성에 젖어있던 미국 교육계엔 신선한 충격을 던진것만은 분명하다.

우리는 어떤가. 리 교육감에 견줄 만한 인물이 있긴 하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일 터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 설계자 위치에서 집행자(교과부 차관)를 거쳐 최고 관리자의 자리까지 올랐으니, 경력만 놓고 본다면 교육운동가 출신인 리 교육감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복받은 존재다. 장관 후보자가 된 이후 교수 시절 논문 표절 사실이 드러나면서 낙마(落馬)에 직면할 수도 있었으나, 다른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교육수장으로는 부적격이기도 한 그의 흠결은 수면밑으로 묻히는 행운도 안았다.

살얼음판을 겨우 지나 두달 여 전 장관 취임식을 가진 그는 스스로 만들고 집행했던 교육정책들이 현장에 착근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중단없는 교육개혁의 칼을 휘두르겠다는 다짐으로 여겨졌다.

사실 이 장관은 까칠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일방통행식의 업무추진과 소위 '스킨십'으로 불리는 친화력이 떨어지는 게 주된 이유일 게다. 청와대 수석때 그랬고, 교과부 차관이 된 뒤에도 별로 바뀐 게 없었다. 교육개혁에 대한 강열한 의지가 그래서 곳곳에서 묻어날 수 있었고, 교육계의 개혁 피로감도 그에겐 딴세상 이야기였다.

교육 수장 등극이 정책 추진에 속도를 붙이고 개혁의 강도 또한 훨씬 강하게 만들것이라고 여겼는데, 이게 빗나가고 있다. 중요한 교육정책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총력전의 태세는 간곳 없다. 그래서 일까. 이 장관이 차관 시절 '긴장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교과부 직원들 조차 헐렁해진 분위기이다. 시쳇말로 군기가 빠져 있다. 조직을 조여도 시원찮을판에 부쩍 이완된 느낌이다.

이 장관의 최근 보폭은'연성(軟性)화'로 요약할 수 있겠다. 얼마전 그는 현장과 소통한다면서'긍정의 편지'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답장도 가급적이면 직접 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숨돌릴틈 없는 빡빡한 장관 일정을 감안하면 립서비스가 아닐까 한다. 한국판'엘 시스테마'를 선보이겠다는 계획도 불쑥 내놓았다.'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음악교육 재단이다. 빈민층 아이들에게 악기를 공짜로 주고 음악을 가르쳐 새로운 삶의 방향을 줬는데, 교과부가 그런 역할을 하겠다는거다. 소외지역 학교 100곳에 학교 당 1억 원씩 줘 오케스트라 창단을 지원한단다. 한가한 발상이다. 소외지역 학교의 최우선 순위가 교육력 제고라고 판단했다면, 이런 구상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장관의 임기는 길어야 내년 말까지 일 것이다. 정치인 출신이어서 내후년 총선 출마는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장관이 된 뒤 목도되고 있는 일련의 행보가 총선을 떠올리게 한다면 시기적으로 너무 이르다. 이주호의 칼은 어디로 갔는가.

김진각 정책사회부 부장대우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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