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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공(地空)'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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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공(地空)'세대

입력
2010.10.21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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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세대의 최대 스트레스는 무엇일까. 죽음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100% 정확한 답이라 할 수도 없다.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며 죽음에 다가서는 것'이라고 하면 어떨까. 정답의 모습이 좀 더 구체화한 듯하다. 노인의 무기력은 자연 노화나 질병이 1차 원인이지만 생활의 무료함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다. 핵가족 시대를 사는 노인들에게 시간은 흘러 넘친다. 그러나 그 시간을 알차고 풍성하게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특히 하위 계층일수록 노인들이 느끼는 무료함의 강도는 더 심해지기 마련이다.

■ 65세 이상 지하철 무료 승차는 노인들의 무료함을 달래주는 공신이다. 덕분에 탑골공원과 같은 노인의 명소는 물론 온양온천, 독립기념관, 오이도, 수락산 등 근교까지 돈 안 들이고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다. 친구들과 경치 구경도 하고 낮술도 한 잔 마시고, 목욕도 한 뒤 지하철에서 곤히 잠든 노인들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 노인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오직 시간 때우기 용으로 지하철을 타는 노인도 적지 않다. 지하철 노약자 보호석은 온종일 앉아 있어도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간섭 받을 일이 없다. 그곳은 노인들의 아늑한 공간이다.

■ 65세 이상 노인들을 가리켜 지공(地空)세대라고 부른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세대라는 뜻이다. 지공세대에 편입돼 처음 공짜로 지하철을 타게 되면 기분이 묘해진다고 한다. 사회의 공식적인 노인 취급이 어색하고 선뜻 인정하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무료 지하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국민의 의무를 다한 사람으로서 이 정도 대접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코 잘못된 인식은 아니다. 문제는 지공세대가 급증 추세라는 데 있다. 지공세대에 의해 지공세대의 혜택이 축소될 수밖에 없는 시점이 조금씩 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 노인 지하철 무료 승차는 연령ㆍ수입ㆍ재산에 따라 혜택을 조정해 해결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일자리와 복지ㆍ여가 시설을 충분히 제공해 노인들이 거주지 주변에서 다양한 활동으로 일상의 무료함을 해소하며 삶의 질을 높이게 해줄 수 없다면 지하철 적자쯤은 노인 복지 비용으로 여기는 게 나을 것이다. 65세 이상 지하철 무료 승차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김황식 총리의 그제 발언은 틀리지 않다. 그러나 그 전에 노인들이 왜 지하철을 무료함을 달래는 벗으로 삼게 됐는지 원인부터 들여다 보는 것이 순서 아니었을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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