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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매의 中國味談] <4> 서태후와 워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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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매의 中國味談] <4> 서태후와 워토우

입력
2010.10.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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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토우(窩頭)는 본래 베이징 사람들에게 가난함의 대명사였다.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설날에 교자를 먹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옥수수가루로 만든 워토우를 먹었다. 이런 워토우가 이제 이름난 베이징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어떻게 이렇게 명품요리가 되었을까? 이는 서태후와 관계가 있다.

1990년 팔국연합군이 베이징을 침략하자 의화군과 베이징 사람들은 힘껏 저항했지만 무능한 청나라는 곧 함락되었다. 서태후는 광서황제와 궁실 사람들을 이끌고 한밤중에 몰래 자금성을 빠져 나와 시안(西安)을 향하여 피난을 갔다. 황급히 궁을 나온 까닭에 먹을 것이 충분치 않았지만 민심이 흉흉하여 서태후 일행은 함부로 신분을 노출할 수 없었고, 지방관리의 보호조차 받을 수가 없었다. 힘들고 지친 피난 길에 배는 고프고 먹을 것은 없으니 시중드는 내시들만 죽을 맛이었다. 이때 관스리(貫世里)라는 시종이 민간에서 얻어온 옥수수가루로 만든 워토우를 지니고 있다가 태후에게 바쳤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평소에 그렇게 식성이 까탈스럽던 서태후는 이 옥수수 워토우를 맛있게 먹었다. 후에 베이징에 돌아온 서태후는 워토우를 올렸던 시종을 인로후(引路侯)에 봉하고 칭찬하였다.

어느 날 서태후는 맛나게 먹었던 워토우가 생각나 수라간에 이를 올리라고 명하였다. 수라간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궁중의 산해진미에 비하면 워토우는 아무런 맛도 없는 한낱 옥수수가루로 만든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잘못 진상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판이고 그렇다고 명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이리하여 모양은 워토우대로 하고 콩가루와 밤가루에 흰설탕 등을 첨가하여 정성껏 만들어 바쳤다. 그러자 까다로운 서태후도 만족하였다. 이때부터 워토우는 서태후의 메뉴 중 하나가 되었다. 청나라가 망한 후에 워토우는 궁 안에서 먹던 다른 요리와 함께 민간으로 퍼져나갔으며 베이징의 유명음식이 되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1956년 중국 국경일에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는 외빈을 접대하는 연회석상에 청나라 황실 수라간에서 일하던 요리사들을 불러 4,000여개의 워토우를 만들어 대접했다고 한다. 그때 참석했던 사람들은 원추형인 워토우의 모양을 보고 ‘금자탑’이라고 칭찬을 하며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현재 베이징에서 파는 워토우는 옥수수가루에 밀가루와 설탕, 계화(계수나무꽃) 등을 넣어 만들고 있다. 베이징에는 워토우만 전문으로 파는 식당도 있고, 길거리 음식으로도 사랑 받고 있다.

salang@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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