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그제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회 투명성을 높여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형태의 차명계좌나 변칙 거래도 근절돼야 한다"고 말했다. 차명계좌를 뿌리뽑기 위해 금융실명제법을 손질하고 증여로 의심되는 차명계좌에 대해 상속ㆍ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신한금융과 한화그룹, 태광그룹 등 대기업 경영주와 최고경영자(CEO)들이 차명계좌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등의 의혹이 연일 제기되는 상황이어서 정부로서도 이를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물론 모든 차명계좌를 찾아내 처벌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어느 정도 관행화한 차명계좌까지 일괄 처벌할 경우 국민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 계 모임이나 문중 등 각종 임의단체들이 일종의 공동계좌를 통해 자금을 관리하거나 부모가 어린 자녀들 명의로 예금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차명계좌가 돈세탁이나 탈세 등의 불법에 악용되는 사례를 마냥 방치할 수는 없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된 지 17년이 지났지만 차명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과 자금 세탁, 세금 탈루를 위한 편법 상속ㆍ증여 등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차명계좌가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벌칙이 너무 가볍고 법원의 판례도 차명계좌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법은 차명 금융자산이 발견되면 해당 계좌 자산의 50%를 과징금으로 물리는 금전적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만, 차명계좌를 사용한 사람이나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은 전혀 없다.
정부와 국회는 차명계좌에 대한 금전적 처벌 강화 및 형사처벌 도입 등 처벌 수위를 높이는 방안에 대해 속히 사회적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금융회사의 차명예금 관리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가족 간 차명계좌 등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한 보완책 마련이 병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법원도 차명예금 실소유주에 대한 엇갈린 판례를 정리해 차명계좌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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