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中, 정부 지원 업고 종교계서도 용틀임… 기대 반 우려 반
“입이 떡 벌어지기는 하는데, 과연 제대로 될지….”
지난 19일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가 열린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의 링산(靈山) 범궁(梵宮).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작불사 앞에서 한국 스님들은 놀라움 한편으로 부러움과 우려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실로 그럴 만했다.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대불은 높이 88m, 연화대까지 합치면 101.5m로 세계 최대 규모의 청동 불상. 13억 위안(약 2,200여억원)이 투입돼 지난해 개장한 범궁은 웅장한 법당과 최첨단의 연회장과 회의장 등을 갖춘, 7만여평 규모의 초대형 불교문화센터이다. 한때 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중국 불교가 최근 중국 정부의 광폭 지원에 힘입어 엄청난 속도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한 단면이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 홍파 스님(관음종 총무원장)은 “중국 정부가 이곳뿐만 아니라 오대산, 아미산 등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을 지원하며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정부의 뒷받침에 힘입어 중국 불교의 성장세가 대단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중국의 용트림이 경제뿐만 아니라 종교 영역에서도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한중일 불교 지도자들이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면서 교류 협력의 뜻을 다지는 자리인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에서도 이 같은 중국 불교의 성장세가 화두라면 화두였다. 매년 3국을 돌아가면서 열리는 이 대회는 올해로 13회째를 맞았는데, 3년 만에 찾은 중국에서 다시 한번 괄목상대의 모습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올해 대회 참가자들은 한국 140여명을 비롯해 모두 500여명. 중국의 추아인(傳印) 중국불교협회장과 왕쭈안(王作安) 중국 정부 종교사무국장, 일본의 고바야시 류소(小林隆彰) 일중한국제불교교류협의회 이사장 등과 함께 한국에서도 한국불교종단협의회장인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비롯해 태고종, 천태종, 진각종 등 주요 종단의 총무원장이 빠짐없이 참가했다.
중국 정부가 불교 중흥 센터로 야심차게 만든 링산 범궁에서 18, 19일 이틀간 진행된 대회는 세계평화기원법회, 학술강연회, 문화공연 등으로 꾸려졌다. 3국 불교지도자들은 부처님의 자비 정신에 입각한 교류와 협력으로 동북아 및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을 다짐했으나, 밑바닥에 흐르는 속내는 복잡한 듯 보였다.
무엇보다 중국 불교의 교세 확장이 다른 나라 입장에선 기대 반 우려 반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해 링산 범궁에서 50여개국 1,500여명의 스님과 불교학자들을 초청해 세계불교포럼도 개최하는 등 세계 불교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뚜렷이 드러냈다. 홍파 스님은 “중국 불교의 성장이 전세계적인 불교 중흥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철저히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중국 불교가 관변 종교의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중국이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고 있지만 정부가 승인하는 종교단체만 인정하는 통제 체제인데다 중국의 승려 대부분도 문화혁명기의 반(反)종교 광풍에 쫓겨서 대부분 환속하거나 은둔해 뿌리가 부실한 상황이다. 불학연구소장인 원철 스님은 “현재 중국 불교는 밑에서 올라오는 게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상황”이라며 “원래 호국불교적 성격도 있다 보니 정부 주도의 종교 정책과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 불교의 국제적 영향력 확장 뒤에는 중국 정부의 패권적 의도가 숨어 있지 않나 하는 우려도 없지 않다. 실제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쉐청(學誠) 중국불교협회 부회장이 주제발표에서 기자조선을 한국의 첫 왕조로 언급해 한국측이 항의를 하는 일도 벌어졌다. 중국측이 “3국 간의 오랜 교류 관계를 설명하다 빚어진 일로 의도적인 게 아니었다”며 사과하기로 약속해 일단 수습됐으나,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 등을 감안하면 개운찮은 뒷맛을 남겼다.
중국 불교가 외형적 확장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진정한 종교성을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또 불교를 전통 문화 차원에서 접근하는데다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강하다. 불교 신앙과 기업체의 수익사업이 공존하는 링산 범궁도 사찰이라기보다는 휘황찬란한 관광지 같은 분위기다.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은 대회가 끝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불교는 민족문화와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자주적으로 커온 한국불교의 장점을 배워야 할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던졌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한국 스님들 "3국 공동 불교사 간행 학술대회 개최를"
제13회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에 참가한 한국측 스님들은 동북아의 긴장 완화와 화해를 위한 다양한 교류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최근 중일 영토분쟁 등으로 긴장관계가 고조되는 동북아 정세에서 3국 공동의 문화적 토대인 불교가 적극적인 화해의 고리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링산 범궁에서 지난 19일 열린 학술강연회에서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원철 스님은 “불교는 동아시아를 통합시킬 수 있는 두터운 문화적 토양으로 동아시아 미래에서 불교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만 한다”며 한중일 공동 불교사 간행을 제안했다. 그는 “최근 한중일 시민단체와 역사학자들이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있는데 불교계도 3국의 불교사를 연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아시아 불교사가 필요하다”며 “동아시아의 불교 역사를 알면 동아시아의 미래가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원철 스님은 “정치를 장엄해주는 수동적 종교가 아니라 올바른 화쟁의 가치관 제시를 통해 정치를 조언하는 주체적인 불교를 만들어야 하는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고 강조했다.
태고종 대외교류협력실장 능해 스님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불법 전파에 공동으로 노력하자”며 불교유적 공동조사 및 정기학술대회 등을 제안했다. 능해 스님은 “3국 불교 교류의 역사는 1,700여년에 달하지만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진실이 적지 않다”며 “불교유적 공동조사는 서로의 우의를 다지면서 불교사를 공고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태종 총무부장 무원 스님은 범지구적 차원의 재난에 공동으로 구호활동을 벌이는 ‘만불재난구조단’(가칭) 창설과 한중일 불교박람회 개최 등을 제안했다. 그는 “불교는 실천이 중요한 종교”라며 “일회성 교류를 넘어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적극적 실천에 나서자”고 강조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사무총장 홍파 스님은 “한국측이 이번 대회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냈는데, 내년 대회를 위한 예비모임 등에서 보다 깊은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시=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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