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포근한 고향의 품 안에서 삶의 여정의 마치고 싶네요, 평생 모은 전 재산은 마을을 위해 기부합니다.”
가난에 쫓겨 혈혈단신 서울로 돈 벌러 떠났던 꽃다운 처녀가 55년 만에 호호백발 할머니가 돼 귀향하면서, 모진 고생 마다 않고 모은 재산 전액을 고향 마을에 기부했다. 조휘령(79) 할머니. 그의 고향 전남 진도군 의신면 돈지마을은 대전으로 팔려 갔다가 7개월 만에 집을 찾아 돌아온 진돗개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조 할머니는 단신 상경을 결심한다. 가난한 살림에 갈아먹을 땅도, 마땅한 돈벌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버티고 살자면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자면 이웃들에게 신세를 져야 했다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였고, 이웃들도 그와 다를 바 없이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는 용산 미군부대 인근에 터를 잡고 군용 조달물품 등을 사서 전국을 돌며 보따리 장사에 나섰다. 돈을 벌겠다는 일념에 그는 결혼도 마다하고 독신을 고집했다. 그는 돈이 모이면 지인에게 부탁해 고향의 논과 밭을 사들였다. 어릴 적 함께 놀던 고향 친구들을 한시도 잊은 적 없었고, 언젠가는 돌아가 살겠다는 희망을 한 순간도 놓은 적 없었다. 땅이 없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젊은 날의 절망이 그의 집념을 부채질했을지도 모른다. 틈틈이 고향에 가서 옛 친구며 어른들과 어울려 며칠씩 쉬고 온 게 조 할머니가 55년간 누린 휴식의 전부였다.
“이제 고향 가야지 하고 문득 나를 돌아보니 이미 늙어 밭 갈 힘이 없더군요.” 할머니는 그렇게 사 모은 논과 밭 2만6,000여㎡(시가 10억 원)의 토지문서를 마을에 고스란히 기부했다. 수십억 원대에 이르는 서울의 동산과 부동산도 모두 정리해 그것도 기부할 참으로 현재 기탁 절차를 밟고 있다고 했다.
돈지마을 주민들은 조 할머니의 뜻을 받드는 송덕비를 세우고, 다음 달 24일 할머니의 80번째 생신에 맞춰 팔순잔치와 함께 제막식을 하기로 했다. 마을 이장 박병연(59)씨는 “할머니가 기부한 재산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마을 청소년들에게는 장학금으로 쓰고, 노인 경로잔치 등 뜻 있는 일에 쓰기로 했다”며 “마을 주민들이 다들 어머니, 할머니, 이모처럼 여기게 된 분이니 고향에 오셔도 조금도 외롭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주민들이 차려준다는 생일상 받을 즈음, 서울 장충동 생활을 정리하고 아예 고향으로 내려올 참이다. 조 할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편히 쉬고 놀다 갈 수 있는 아담한 집 한 채 지어 살 계획”이라고 말했다. 진도=
박경우기자 gw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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