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숨은 토종 찾기 25년… "지금도 사라지고 있을 생각에 안타깝죠"
너른 마당에서 안철환(48)씨가 빨래판을 이용해 옥수수 알을 털고 있다. 표면이 울퉁불퉁한 빨래판에 옥수수를 문지르면 낱알이 생각보다 쉽게 떨어진다. 김석기(33)씨는 수세미를 탁탁 바닥에 내리치면서 씨앗을 빼내고 있다. 마당에는 옥수수, 수세미 말고도 수수, 피마자, 조, 동부, 덩굴강낭콩 등이 놓여 있다. 안씨 등이 며칠 전 충북 괴산군 일대에서 수집해온 토종을 정리하는 자리다.
“괴산의 농가를 가가호호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것이지요. 모두 오래 전부터 재배해온 토종들입니다.”
안완식(69) 박사가 마당에 놓인 작물 종자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한다. 그는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안철환, 김석기씨 등 5명으로 수집팀을 꾸려 7월부터 괴산 일대를 훑고 있다. 생태농업을 연구하고 친환경 유기농산물을 인증하는 사단법인 흙살림의 요청을 받아 하는 일로, 일행은 매주 1박 2일 현지를 방문해 토종 작물과 그 종자를 수집하고 있다. 그렇게 모은 토종 종자를 경기 화성시 봉담읍 안완식 박사 자택으로 가져와 품종명과 특성, 보유기간 등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날도 그 일을 하다가 기자와 만난 것이다.
지금까지 괴산에서 모은 토종 종자는 240~250점 정도. 안 박사는 “농가에서 재배하는 곡물, 채소, 특용작물 등의 다양함에 비하면 수집한 토종이 너무 적다”고 아쉬워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을 다 뒤져도 토종 하나 발견하지 못할 때가 있다.
토종은 선조가 물려준 소중한 유산, 급속하게 사라져 안타까워
25년 이상을 토종 수집 및 연구에 매달려 온 안완식 박사는, 일흔을 앞둔 지금도 토종을 찾고 보급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열심이다. 1969년 농촌진흥청에 농업연구사로 근무를 시작한 안 박사는 1985년 품질과장이 되고 유전자원관리업무를 맡으면서 토종과 직접적인 인연을 맺었다. 그는 품질과장이 되자마자 전국의 농촌지도사들에게 토종 유전자를 수집해 보내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그 해 말 5,100점 정도의 토종 종자를 모았는데 국가 차원에서 이뤄진 최초의 토종 유전자 수집 작업이었다. 그 뒤 공적 업무 말고도 휴일, 휴가 등 개인 시간을 쪼개 토종을 찾아 다녔고 그런 과정을 거쳐 자연스럽게 토종 연구의 대가로 인정받게 됐다.
1997년에는 한국토종연구회 발족을 주도했다. 대학 교수, 연구원, 농민 등을 회원으로 두고 토종 자원의 보존 방안 등을 공부하는 모임인데 그는 회장, 명예회장을 거쳐 지금은 고문으로 있다. 2002년 농촌진흥청에서 퇴직하고 2007년에는 카페 씨드림을 만들었다. 씨드림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귀농운동본부, 흙살림 등과 함께 만든 카페로 그가 회장을 맡고 있다. 씨드림은 파종 직전인 3월초 종자를 나누는 행사를 한다.
2008년에는 제주도, 강화도, 울릉도에서 토종 종자 수집 작업을 했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과 함께 전북 정읍, 강원 횡성, 경남 함안 등에서도 토종 종자 수집 활동을 했다.
그가 토종 찾기와 보급에 주력하는 이유는 토종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토종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파악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농민들이 수확량 많고 병충해에 강한 새 품종을 선호하는데다, 농촌 인구가 감소하면서 농사 역시 단순해지고 있기 때문에 복잡하게 여러 종자를 심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안 박사가 파악한 토종 감소의 이유다.
그렇지만 그는 토종을 그렇게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사전적으로 말하면 토종은 우리 기후 풍토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생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거기에는 우리 민족의 얼이 배어있다. 안 박사가 “토종은 선조가 물려준 소중한 유산으로 우리의 의식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토종은 유기농업, 생물학 및 생명공학 연구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해마다 1대 잡종(F1) 종자를 구입해 농사를 짓는 농촌의 현실도 그가 토종에 매달리는 이유 중 하나다. 옛날에는 알곡 가운데 튼실한 것을 골라 종자를 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F1종자를 사서 쓰는데 첫해에는 수확이 좋지만 다음해에는 수확량이 떨어지고 병충해에도 약해지기 때문에 농민들은 또 다시 F1종자를 사서 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활발해진 종자주권 논의도 토종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선진국에서 후진국의 농업유전자원을 가져가 새 품종을 만든 뒤 후진국에 팔아먹자, 후진국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서 토종 찾기 운동이 활발해 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토종이 과거보다는 주목을 받고 있다.
유기농을 하자면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몸에 좋은 작물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토종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토종 수집하면서 오해도 많아, 1농가 1토종 갖기 운동 전개
오랫동안 토종을 수집, 연구해왔지만 그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농민들에게 일일이 물어보고 종자를 보여달라고 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주민들에게 “혹시 토종 작물이 있느냐”고 물어보면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일하기 바쁜 농민 입장에서는 토종이니 뭐니 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그냥 집에 있는 참깨, 들깨, 콩, 팥 등을 보여달라고 하고 그것들을 언제부터 재배했는지 등을 물어 보는 것으로 토종 확인을 시작한다. 만약 선대 때부터 혹은 30~40년 전부터 재배했다고 하면 토종일 확률이 높다.
그의 경험으로 볼 때 한 집안의 종자를 관리하는 사람은 대개 60대 이상의 여성이다. 거기에 남편이 살아 있고,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는 깔끔한 성격의 소유자가 토종도 많이 갖고 있다.
토종을 수집하면서 오해도, 어려움도 많았다. 1980년대 말 경기 파주에서는 배낭을 메고 남의 집을 기웃거리다 간첩으로 오인돼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다. 2008년 제주에서는 큰 눈 때문에 차가 미끄러져 사고가 날 뻔 했으며 최근 괴산에서는 산길을 달리다가 바퀴 2개가 허공에 뜨고 나머지 바퀴 2개만 아슬아슬하게 도로에 걸리는 일도 있었다.
어렵게 수집한 토종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분홍감자와 삼층걸이파다. 분홍감자는 농촌진흥청에 근무할 당시 강화도에서 본 적이 있는데 2008년 그곳에 다시 갔다가 어렵게 찾았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물어보아도 분홍감자를 모른다고 해서 포기하려는 순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물어본 한 할머니가 뒤란에서 분홍감자를 가져왔고 안 박사는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할머니를 껴안았다. 삼층걸이파는 이번 괴산 조사에서 발견했는데, 과거 충청도에 이 종이 있었다는 말만 듣고 한 아주머니께 무심코 물었다가 찾은 것이다.
이렇게 토종을 찾아 다니면서도 그의 생각은 여전히 복잡하다. 토종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커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적으로는 토종이 계속 사라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토종 종자를 보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일종의 캠페인으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등과 함께 1농가 1토종 갖기 운동을 하고 있다.
토종 종자는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원센터도 보관하고 있지만 농민이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안 박사는 강조한다. 농민이 토종 종자를 이용해 직접 농사를 지어야 온난화 등 지구 환경 변화에 맞춰 종자가 자연스럽게 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지역에 토종을 보존하는 공간을 만들거나 토종마을을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토종 마을로 지정할 경우, 그에 따른 보상을 해주고 그 사실을 널리 홍보하면 제법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안 박사는 전망했다.
박광희 편집위원 khpark@hk.co.kr
■ 독야청청 매화 사랑… 30여년 자료 모아 원고로
안완식 박사의 집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에는 매화가 줄을 서있는데 모두 그가 심은 것이다. 안 박사는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자택 부근에 아예 매화농원까지 차렸다. 지금은 매화가 필 시기가 아니지만 초봄이 되면 이 길은 온통 하얀 매화 세상이 된다. 그는 자신의 호를 매화의 벗이라는 뜻에서 매우(梅友)라고 지었을 정도로 매화를 좋아한다.
“매화는 우리 선조가 가장 좋아했던 꽃입니다. 추울 때에도 하얀 꽃을 피우기 때문에 독야청청하는 기운이 느껴지기도 하지요. 향도 좋고요.”
그는 그래서 30여 년 전부터 매화의 생태와 분포, 매화 및 매실의 활용 등을 조사했는데 최근 그 자료를 모아 원고를 완성했다. 매화 사진은 모두 그가 촬영한 것이다.
안 박사에 따르면 순천 선암사, 구례 화엄사, 강릉 오죽헌 등에 있는 매화가 수령 600년 안팎의 가장 오래된 매화에 속한다. 붉은색 꽃이 겹으로 피는 창덕궁의 만첩홍매나,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가져간 매화의 묘목을 가져와 심은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앞 매화도 감상할 만한 것이라고 안 박사는 말한다. 순천 금둔사, 양산 통도사, 부안 내소사 등의 매화 역시 매우 아름답다고.
그는 “정결한 기품과 은은한 운치가 있는 매화는 동양의 정서를 잘 표현하는 청정한 꽃”이라며 “출판 계획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조사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먼저 원고를 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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