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일도 제대로 되는 게 없는 30대 미혼 여성 지은(추자현), 참 참을성 없다. 직장을 잃은 날 시비가 붙어 술병을 휘두른다. 결국 합의금으로 오피스텔 보증금까지 날리고 의사 남편을 둔 친구 경린(한수연)의 집에 기생한다.
안락한 삶을 사는 듯한 경린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남편 병원의 직원 동주(김흥수)가 보내는 끈질긴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끝내 몸을 던진다. 등장인물 중 가장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듯한 경린의 남편 명헌(정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과 죽이 척척 맞는 지은과 정을 나누게 된다.
네 남녀의 엇갈린 4각 사랑을 그려낸 영화 ‘참을 수 없는’의 제목 뒤에는 ‘존재의 가벼움’이 생략된 듯하다. 아직 이루고 싶은 건 많지만 현실은 팍팍하고 무료하기만 한 30대 네 남녀의 허허로운 삶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그래도 사회생활 8년차인데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네”라는 지은의 대사는 이 시대 30대의 쓸쓸한 군상을 대변한다. 물질적으로 크게 부족하지 않은 세대지만 등장인물들은 정에 굶주려 있고, 쿨한 듯한 그들의 실제 삶은 구질구질하기만 하다.
눅눅한 분위기가 스크린을 장악하나 영화의 서술은 그리 심각하지 않다. 얹혀 사는 주제에 핫팬츠를 입고 친구 남편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는 지은의 덜렁거리는 성격이 자주 웃음을 부른다. “아빠도 없는 애가 지 엄마 먹여 살리느라 애쓴다”(홀로 해고 당하지 않은 싱글 맘 여성 상사에게 지은이 던지는 말) 등의 현실을 반영한 대사들도 찰기가 있다.
삶의 출구를 찾는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시선도 따스하다. 일과 사랑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힘겹게 찾아가는 여성들의 고민을 섬세하게 담아낸 점은 이 영화의 미덕. ‘싱글즈’와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여성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본 권칠인 감독의 연출력은 여전하다.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들이 종종 눈과 귀를 자극하나 영화의 전체적인 흡인력은 떨어진다. ‘꼭 넣었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장면들이 몰입을 방해한다. 욕심을 버리고 잔가지를 쳐냈으면 좀 더 미끈한 작품이 되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을 남긴다. 2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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