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편향’논란을 빚은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를 수정한 위원들의 명단과 소속 및 지위를 공개하라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판결이 확정돼 위원들의 면면이 공개될 경우 교과서 수정작업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행정5부(부장 김문석)는 20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의 수정권고안을 마련한 역사교과서전문가협의회 위원 명단과 회의 일시를 공개하라”며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먼저 “교과부가 출판사에 내린 수정지시 처분은 사실상 근ㆍ현대사 교과서 검정을 새로 실시한 것임에도 교과부는 이에 필요한 심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사실상 법령에 직접적 근거를 두지 않은 협의회가 만장일치로 마련한 수정권고안을 터잡아 수정지시 처분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토대로 재판부는 “협의회가 청소년의 역사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역사교과서를 수정하는 등 중요한 업무를 담당한 만큼 신상정보를 공개해 교과부가 밝힌 대로 협의회가 건전한 국가의식과 역사교육에 대한 전문적 식견을 가진 전문가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령에 따라 위탁해야 할 업무를 (이 협의회처럼)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위탁했는데도 업무 담당자의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고 한다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에 따른 업무 위탁보다 비공식적 자문 등에 의존하게 돼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마련한 정보공개법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회의록 전체를 공개하라는 민변의 청구에 대해서는 “협의회가 별도의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각하했다.
교과부는 교과서포럼 등이 금성출판사 등 6개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 내용 253개 항목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자 교사, 교수, 연구원 등으로 구성된 역사교과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검토한 뒤 2008년 10월 55건에 대해 수정권고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민변은 같은 해 11월 교과부에 협의회 참석자와 회의 일시 및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1심은 “명단이 공개될 경우 실질적으로 위원들의 개인적 사상과 역사관이 공개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향후 교과서 검정 등 공적 업무 수행에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 3명이 낸 소송에서 “금성출판사의 근ㆍ현대사 교과서에 대한 교과부의 수정명령은 적법한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므로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이날 판결에 대해 교과부는 “역사교과서전문가협의회는 명단 비공개를 전제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에 신의의 문제가 걸려 있고, 공개하면 사생활 침해 소지가 있다”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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