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고위급 지도자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의 호위를 받으며 파키스탄 은신처를 벗어난 곳에서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종전 협상에 돌입했다. 미국 등 아프간 전쟁 참여국들의 출구전략이 본격화한 가운데, 탈레반 고위층이 직접 참여한 첫 협상이 시작됨에 따라 9년을 끌어온 전쟁이 극적으로 긴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20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의 측근 인사들은 최근 카불 외곽에서 탈레반 지도층 그룹 '퀘타 슈라(Quetta shura)', 강경 게릴라 집단 '하카니(Haqqani)'의 리더들과 만나 비밀리에 종전 회담을 가졌다.
신문은 연합군의 공격을 피해 주로 파키스탄 국경 산악지대에 은신해 있던 탈레반 핵심 인사들이 대거 카불로 들어올 때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나토군이 호위까지 했다고 전했다. 더욱 확실한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일종의 신사협정이 맺어진 것으로 전쟁이 막바지에 달했다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NYT는 "탈레반 리더들이 나토 군용기를 이용해 국경을 넘어 카불로 향했으며 지상에선 역시 나토군 호위차량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이동했다"고 전했다. 탈레반 지도층의 카불 정부 방문에 앞서 나토는 "절대 이들을 향해 체포 등 공격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확약했다고 NYT는 덧붙였다.
아프간 정부관리에 따르면 이번 종전협상에 참여한 탈레반 인사는 최소 4명이다. 이중 3명이 퀘타 슈라의 구성원이고 한 명이 하카니 지도자로 보인다. NYT는 협상단의 정확한 이름과 직책을 확보했지만 이들에 대한 암살시도가 우려된다는 백악관의 우려에 따라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종전협상은 초기단계여서, 당장 양측이 종전을 선언하는 상황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있다. NYT는 "미국과 아프간 정부는 현재 협상 참여 인물들의 탈레반 내 실제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 중이다"며 "파키스탄 탈레반이 협상에서 빠져 있다는 점도 낙관적 전망을 가로막는다"고 전했다. 인터뷰에 응한 한 파키스탄 성직자는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뮬라 오마르가 협상에 나서지 않는 한 큰 결실이 나오긴 어렵다"고 밝혔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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