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보고, 늘 마지막 순간까지도 안심하지 못하던 '야신'도 자신의 빗나간 예상을 시인했다. 김성근(68) SK 감독은 19일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완승을 거둔 직후 "이렇게 쉽게 끝날 줄 몰랐다"고 운을 뗐다. 김 감독은 "우리는 베스트로 끝났고, 삼성은 피로가 덜 풀린 것 같았다"면서 "4경기 모두 주도권을 잡아서 이길 수 있었다"고 평했다.
지난 시즌 혈투 끝에 KIA에 뺏겼던 우승컵을 너무 쉽게 되찾아 온 김 감독으로선 허탈할 수도 있는 '완승'이었다. 하지만 장소가 대구였기에 의미는 각별했다. LG 사령탑이던 2002년 명승부 끝에 준우승에 그친 대구구장에서 8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 김 감독은 "8년 전 삼성이 강팀이었고, 지금도 강팀이어서 의미는 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2002년 준우승을 차지하고도 LG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구단 고위층과 마찰 끝에 물러난 김 감독에 대해 LG 팬들은 겨우내 대규모 해임 반대 시위를 벌였다.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김 감독에겐 '만년 2인자'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 코디네이터를 거쳐 심기 일전의 각오로 다시 잡은 국내 프로야구 지휘봉은 김 감독에게도 '마지막'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김 감독의 축적된 노하우는 마침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2007년 SK를 창단 첫 우승으로 이끈 뒤 2008년에도 통합 우승으로 2연패를 달성했다.
지난해 김 감독에게 두 번째 시련이 찾아 왔다. 주전 포수 박경완 등 부상병들이 속출한 가운데 페넌트레이스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두산과의 플레이오프에서 2패 후 3연승의 기적을 연출한 김 감독은 KIA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7차전 혈투 끝에 무릎을 꿇었다. 2002년에 이어 '감동의 준우승'이었지만 5-1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했기에 아쉬움과 충격은 컸다.
김 감독은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도 현란한 마운드 운용으로 선동열 삼성 감독에게 한 수 지도했다. 1, 2차전에서 선발 김광현과 이승호를 조기에 끌어내리고 좌우 불펜을 풀가동하며 승리를 지킨 데 이어 4차전까지 한 번도 선발승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삼성의 오른손투수를 상대한 1차전과 3차전의 선발 라인업이 같았고, 차우찬이 등판했던 2차전에서는 정규시즌 차우찬에게 승리를 거뒀던 라인업을 옮겨 와 치밀한 데이터이자 '징크스'를 성공시켰다.
수식어가 필요 없는 '명장'으로 우뚝 선 김 감독의 야구는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만개하기 시작했다.
대구=성환희기자 hhs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