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SK의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 전부터 분위기는 이미 이날의 승패를 어느 정도 예고하고 있었다.
김성근 SK 감독은 "해태도 광주에서 우승한 적이 거의 없지 않았느냐"는 말로 4연승 우승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선수들도 "굳이 잠실로 갈 이유가 있냐"며 대구에서 끝내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반면 선동열 삼성 감독은 "우리 팀은 내년에도 왼손투수가 걱정이다. SK는 엔트리에 왼손투수 5명을 넣었는데 우리는 통틀어서 왼손투수가 5명뿐"이라며 '내년'을 화두로 삼았다. 선수들 역시 말은 아꼈지만 사실상 전의가 꺾인 모습이었다.
SK가 4차전에서도 4-2로 승리,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다. SK의 우승은 2007, 2008년에 이어 2000년 창단 후 세 번째다. 또 4승 전승 우승은 87년 해태, 90년 LG, 91년 해태, 94년 LG, 2005년 삼성에 이어 SK가 6번째다.
1차전 쐐기 투런포와 4차전 2타점 2루타 등 4경기에서 14타수 5안타(1홈런) 6타점을 기록한 SK 박정권(38표)은 2차 투표 끝에 박경완(32표)을 제치고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박정권은 부상으로 폭스바겐 골프 TDI 차량(약 3,300만원)을 받았다.
▲SK의 '공격적인' 지키는 야구
SK 야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선발투수 중 규정이닝을 채운 선수는 김광현(17승7패)과 카도쿠라(14승7패) 2명뿐이다. 그렇지만 불펜은 삼성과 더불어 최강이다.
SK 불펜의 중심은 왼손이다. 이승호(20번) 전병두 정우람 이승호(37번)로 이어지는 왼손 라인은 한국시리즈에서도 빛을 발했다. 전병두는 평균자책점 0, 이승호(20번)는 평균자책점 1.80, 정우람은 2.08, 이승호(37번)는 2.25를 기록했다.
이들은 최형우 박한이 이영욱 채태인 조영훈 등 삼성의 막강 왼손타자들을 철저히 봉쇄했다. 4차전에서는 1차전 선발이었던 김광현이 8회 1사 1ㆍ3루에 마운드에 올라 1과3분의2이닝을 1점으로 잘 막았다.
타자들도 마찬가지다. "SK에는 선수는 많은데 스타는 없다"는 비판도 있지만 철저히 팀 퍼스트(First)다. SK는 이번 시리즈에서 모두 7개의 희생번트를 성공했다. 정규시즌에서도 번트(147개)가 가장 많았던 SK는 한국시리즈에서도 필요할 때는 거의 예외 없이 번트를 택했고 타자들은 벤치의 의도대로 움직여줬다. 또 찬스가 오면 초구부터 적극적인 스윙으로 상대 마운드를 압박했다.
베테랑 포수 박경완은 야전 사령관답게 공수에서 팀을 잘 지휘했다. 하일성 KBS 해설위원은 "박경완은 SK 투수들의 가장 좋은 공을 승부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투수들은 그만큼 편한 상태에서 타자와 승부한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무기력한' 지키는 야구
정규시즌 때부터 삼성은 SK의 유일한 대항마로 꼽혔다. 김성근 감독의 심리전에 말려들지 않는 선동열 감독의 두둑한 뱃심, 5회 리드 시 53연승(2패)에 빛나는 막강 불펜, 최형우 박석민 채태인 등으로 이어지는 젊은 타자들은 힘에서 SK에 밀리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삼성은 SK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선 감독은 정규시즌 때만큼 과감하지도, 치밀하지도 못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김성근 감독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2005년 삼성 지휘봉을 잡은 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던 선 감독은 4년 만에 오른 정상의 무대에서 첫 패배의 아픔을 맛봤다.
불펜도 의외로 허약했다. 물론 두산과 플레이오프 때부터 선발투수가 제 몫을 못했던 탓에 피로가 누적된 게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힘에서도, 수 싸움에서도 SK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했다. 팀 타율 1할대에 허덕인 타자들은 시종 무기력했다. 삼성은 1차전에서만 5점을 뽑았을 뿐 2~4차전에서 5점에 그쳤다.
선 감독은 4차전을 마친 뒤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경기를 하지 못해 팬들에게 죄송하다. 두산과 플레이오프를 치르면서 선수들이 지친 것 같다. 작년 5위에서 올해 2위를 차지한 것은 젊은 선수들이 잘해줘서 가능했다. 올해 한국시리즈 경험이 젊은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을 것"이라며 미래를 기약했다
김종석기자 lefty@hk.co.kr
대구=최경호기자 squeeze@hk.co.kr
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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