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세금을 물리려는 국세청, 반대로 어떻게든 의뢰인(주로 대기업)의 세금을 줄이려는 법무ㆍ회계법인. 그렇기 때문에 양자는 언제나 주어진 법규를 놓고 치열한 법리싸움을 벌일 수 밖에 없고, 관계는 늘 대립과 갈등의 연속이다.
이 점에서 19일 국세청 초청 법무ㆍ회계법인 간담회는 주목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국세청장이 우리나라 법률ㆍ회계시장을 쥐락펴락 하고 있는 10대 로펌과 10대 회계법인 대표들을 부른 것은 세정사상 처음 있는 일. 로펌 중에선 김앤장 세종 태평양 광장 바른 등, 회계법인에선 삼정KPMG 삼일 안진 등의 대표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한 국세청 관계자는 이날 조찬간담회를 두고 ‘적과의 아침식사’라고 표현했다.
이 청장은 모두에 “혹시 여러분들의 오해가 있을까 봐 조사국장은 부르지 않았습니다”라면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지만, 간담회가 시작되자마자 작심한 듯 강도 높은 발언들을 쏟아냈다.
“법무ㆍ회계법인은 모두 고객인 대기업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공인한 세법전문가로서의 공적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 “아쉽게도 그간 법무ㆍ회계법인들이 세법의 사각지대를 활용하거나 입법취지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문구해석으로 탈세나 조세회피행위에 도움을 주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앞으로 대기업이나 대재산가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국가에서 공인받은 전문인으로서 엄격한 윤리기준에 따라 공익적 견지에서 판단해 주기 바란다" 등등.
정중하고 우회적인 표현이었지만, 결국은 ‘변호사와 회계사들이 법 지식을 이용해 대기업들의 탈세를 도와주는 것 아니냐’는 얘기였다. 아울러 ‘의뢰인의 사적 이익을 추종하지 말고 국가공인 전문가 답게 공익적으로 행동하라’는 당부, ‘탈세방조행위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메시지였다.
이 청장의 이런 거침없는 발언들이 이어지자, 참석했던 법무ㆍ회계법인 대표들의 표정은 상당히 긴장모드로 바뀐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참석자들은 “우리는 고객인 대기업과 관계에서 을(乙)일 수 밖에 없어 성실납세를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 “국세청이 직접 대기업을 만나 설득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국세청 관계자는 “법무ㆍ회계법인들을 겁주거나 윽박지르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면서 “하지만 대기업이나 대주주가 성실납세 의무를 이행하는 데 변호사와 회계사들의 역할이 막중하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