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 파괴됐던 남한산성 행궁이 복원에 착수한 지 10년 만에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남한산성 행궁은 조선시대 국가 유사시 임금이 한양 도성을 떠나 거처했던 곳이다. 인조가 이괄의 난을 계기로 유사시 피난처로 이곳을 정하면서 1624년 남한산성, 1625년 행궁을 건립했다. 수원화성, 북한산 등에도 행궁이 있었지만 남한산성은 국가 위난시에 임금이 머무는 특수한 곳이었다. 평상시에는 광주유수가 머물러 군청 소재지 역할을 하기도 했으나, 19세기말 일제에 항거한 연합의병부대의 거점이 되면서 일제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됐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1998년부터 남한산성 종합정비계획을 수립해 2000년부터 행궁터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2002년 10월에 임금의 침소인 상궐을, 2004년 8월에는 종묘에 해당하는 좌전을 복원한 데 이어 이번에 임금의 정무공간인 하궐을 복원함에 따라 행궁으로서의 골격을 갖추게 됐다. 오는 24일 오전 10시 행궁 정문인 남한루에서 준공식이 열린다.
남한산성은 행궁의 복원 작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지난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 탁월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이번에 하궐이 갖춰짐으로써 남한산성이 정식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이 충족됐다.
행궁 복원은 유네스코에서 권고하는 기준에 부합하도록 진행됐다. 발굴을 통해 터를 확인하고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 등 고문헌과 옛 사진 등을 철저히 고증해 옛모습을 찾아냈다. 복원공사 과정에서도 인근 마을에 흩어져 있던 행궁의 석재를 수습해 원 위치에 재사용했다. 또 발굴과정에서 통일신라시대 대형 건물 유구가 발견돼 남한산성이 나당전쟁에서 당을 축출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주장성(晝長城)이었음이 확인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당시 오랑캐에 항복한 치욕의 현장으로 인식되면서 한동안 방치되어 왔으나 이번 행궁 복원을 계기로 일반의 인식이 바뀌게 될 것으로 보인다. 행궁지 발굴조사를 이끈 조유전 경기문화재단 이사장은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나라에 굴욕을 당한 삼전도는 지금의 서울 송파 지역이며 남한산성은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었다”면서 “남한산성은 단순한 성이 아니라 유사시 국가의 기능이 이전된 장소라는 독특한 위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자신이 만들어놓은 남한산성 행궁에서 47일간 항전했지만 산성 내 식량이 떨어지고 몽골 침입 때도 끄떡없었던 강화도가 함락돼 봉림대군이 인질로 잡히자 성을 나와 항복했다. 그렇지만 남한산성은 함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후에도 제1순위의 보장처로서 계속 증축됐다. 초창기 행궁은 침전인 내행전과 정전인 외행전만을 두었지만 숙종 대에는 종묘인 좌전과 사직인 우실을, 정조 대에는 행궁의 정문인 한남루를, 순조 대에는 광주유수의 집무처인 좌승당과 일장각을 건립하는 등 국가의 환난에 대비했다.
경기도는 향후 남한산성 종각 복원 등 주변 권역을 정비하고 행궁 하궐 단청공사를 마친 후, 발굴과정에서 나온 무게 18~19kg의 초대형 통일신라시대 기와 등을 전시해 내년 하반기에 일반에 본격 공개할 예정이다.
24일 준공식에서는 한남루 제막식과 전통의식인 입궁식이 차례로 진행된다. 그 동안의 발굴조사와 복원과정을 보여주는 전시, 복원을 축하하는 부대행사도 열린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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