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시 하오(선생님 안녕하세요)!”
“니 하오(애들아 안녕)!”
13일 오후 서울 회기동 경희대에 위치한 경희유치원 교실. 유치원 아이들과 초등학교 저학년생들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날은 서울 동대문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다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3~6월에 이어 2차(10~12월)로 진행하는 ‘이중언어교실 프로그램’의 첫날이다. 3세 이상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면 부모의 국적과 관계없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니 하오. 선생님은 중국에서 왔어요. 이름은 왕진펑(王金鳳ㆍ34)이에요. 선생님이랑 재미있게 보내요.” 윈피스 형태의 중국 전통 의상인 치파오(旗袍)를 입고 한국말과 중국말을 번갈아 쓰는 선생님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번 2차 프로그램에 참석한 20여명의 어린이 중에서 엄마가 중국인인 아이가 2명 있지만 이들도 사실 중국말에 노출된 경우는 많지 않다. 중국말을 미리 배우면 아이가 혹시라도 혼란을 겪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집에서 중국말을 아예 쓰지 않는 가정이 많아서다.
물론 최근에는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된 데다 남편과 가족들도 반대하지 않아 친정 나라의 말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경우도 늘고 있다. 6세 아들을 둔 한련휘(韓仁慧ㆍ35ㆍ중국 출신)씨네가 그런 가정에 속한다. 여름방학 때 친정에 가서 아이가 할머니와 함께 지내도록 했고, 이번엔 이 프로그램에 등록해 중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한씨는 “선생님이 중국 분이라 엄마 나라에 대해 자부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라고 기뻐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엄마가 일본에서 온 아이가 3명이고, 필리핀 엄마를 둔 아이도 4명이나 있다. 아이가 엄마 나라 말뿐 아니라 다른 말도 공부하면서 편안하게 여러 문화를 수용하도록 하자는 차원에서다. 초등학교 1학년 아들 김모군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석한 카시퐁 돈나벨(38ㆍ필리핀 출신)씨는 “먼저 배운 큰 아이가 좋아해 등록하게 됐는데 다른 문화를 이해하면서 엄마 나라에 대해 호기심도 키울 수 있어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부모 모두가 한국인인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부모가 다문화인인 아이들이 차별 없이 자라기 위해서는 한국 아이들이 선입견 없이 이들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여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날 교사로 참여한 왕씨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여러 문화를 느끼고 배우면서 차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사실 다문화라는 말조차 굳이 쓸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다문화가정은 의외로 많지 않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동남아시아 국가 언어에 대해서는 편향적 인식을 갖고 있고, 자녀를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시킬 만한 근무 여건이 되는 결혼이주여성도 적어서다. 또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지만 엄마의 교육 수준이 높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고, 아이 스스로가 주위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말을 배우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결혼 7년차인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 A씨는 “아이가 집에서 곧잘 말하다가 밖에 나가면 절대로 안 해요”라고 씁쓸해 했다. 이런 상황은 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의 통합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개연성이 클 수밖에 없다. 김이선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모국어를 통한 관계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일상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이중언어 놀이와 교육자료를 개발, 보급하고 모국어를 통한 자녀 양육 과정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는 현재 전국 52개 센터에 이중언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아직은 걸음마 단계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 주역이 될 아이들의 인식 전환이 향후 사회 통합에 큰 역할을 하는 만큼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예정이다. 정선아 동대문구다문화지원센터 팀장은 “ 이 프로그램은 아이의 교육에도 도움이 되지만 엄마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엄마와의 관계가 향상된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기수기자 blessyou@hk.co.kr
■ 사전정보 나누고 불법 중매 처벌 강화… 한 베트남 국제결혼 MOU
한국과 베트남이 국제결혼 건전화를 유도하기 위해 결혼이민자 사전정보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고, 국제결혼 정보를 긴밀하게 교환하기로 했다.
여성가족부는 21일 베트남 현지에서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과 베트남 여성연맹 주석이 ‘국제결혼 건전화 및 여성발전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고 19일 밝혔다. 베트남 정부는 사전정보프로그램 교육 장소를 제공하고, 한국 정부는 프로그램 내용 강화와 교육 기간 확대에 노력하기로 하는 것이 양해각서의 내용이다. 아울러 국제결혼 건전화를 위해 양국이 결혼 당사자의 신상정보 제공에 관해 협력하고 관계 당국은 불법 결혼중개 처벌 강화와 상호 정보교환를 위해 공동 협력키로 했다. 또 국제결혼에 관한 법 제도 정책의 개선을 위해 공동 협력하고, 양성평등에 관한 정책 협력도 확대하기로 했다.
백 장관은 “이번 양해각서는 국제결혼 문제와 관련해 외국과 처음으로 체결하는 것”이라며 “이 양해각서는 건전한 국제결혼 문화 조성과 양국 간 협력 관계 증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기수기자
■ "엄마 선생님에 교육비 지원, 남편 아이 인식 바꿔주세요"
“아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아이가 한국말 못할까 걱정인데 베트남말을 가르치라고요?” 2월 다문화가족과장으로 근무할 때 한 다문화가정에게 엄마 나라 말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권하자 남편과 시부모는 모두 반대하며 펄쩍 뛰었다. 베트남 출신 엄마도 “남편은 베트남말로 친정과 전화하는 것도 싫어한다”며 멋쩍게 웃었다. 다문화사회를 지향하는 한국에서 이중언어 교육이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들 자녀의 언어 능력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말이 서툰 엄마가 육아를 전담하는 터라 아이는 한국말에 노출될 시간이 적다. 그렇다고 한국말을 하는 다른 가족들이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엄마가 아이와 자기 나라 말로 얘기하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결국 아이는 한국어도 제대로 못하고, 엄마 나라 말은 접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중언어 교육은 중요하다. 이중언어 사용자는 단일언어 사용자보다 지적 유연성이 뛰어나고, 사회 문제를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중언어가 가능하면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 국내에서는 물론, 엄마 나라에서도 외교관 사업가 여행가이드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지금은 엄마 나라가 개발도상국이지만 10년, 20년 후엔 한국을 넘어설 수 있다.
또 이중언어 교육은 아이에게 엄마와 엄마 나라를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 줄 수 있고, 외가와의 친밀감 형성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학교, 사회, 마을 공동체가 힘을 모아 다문화가정에 이중언어 학습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이중언어 교육을 하는 게 좋을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유아연구소의 재닛 워커 박사는 “엄마 뱃속에서부터”라고 주장한다. 실제 영어만 하는 엄마와 영어 필리핀어를 함께 쓰는 엄마에게서 태어난 신생아들의 각 언어 반응을 조사한 결과, 영어만 쓰는 엄마가 낳은 아기는 영어에만 반응했지만 영어와 필리핀어를 쓰는 엄마가 낳은 아기는 두 개 언어에 흥미를 보였다.
필자는 다문화가정의 이중언어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해 정부(또는 지자체)가 ‘엄마 선생’에게 매월 일정액을 이중언어 지도비를 주는 방안을 제안한다. 정부에서 엄마 나라 말을 배우라고 돈을 준다면 남편은 부인을 다시 한번 볼 것이고, 그 말을 한번쯤 배우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이런 조그만 변화는 이중언어를 하는 아이들이 한국 사회의 주도층으로 자리잡으며 제2, 제3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으로 성장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이성미 여성가족부 행정관리담당관ㆍ 저자
■ 다문화가족지원 담당 공무원 첫 교육과정 개설
여성가족부는 내달부터 새로 바뀌는 국제결혼중개업 및 다문화가정에 대한 공무원의 이해 제고와 실무 역량 강화를 위해 20일부터 12월 10일까지 총 7기에 걸쳐 지방자치단체의 다문화가정 지원 및 결혼중개업 관리 업무 담당 공무원 280명을 대상으로 교육 과정을 시범 개설한다고 19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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