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시국춤으로 더 잘 알려진 중요무형문화재 제 27호 승무예능보유자 이애주씨는 아직도 민중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고 했다. 그러나 민중이란 단어는 내용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분명 퇴색했다. 지금 이 시대 한국을 담아내는 개념어로는 빛이 바랬거나 협량한 것이 사실이다. .
극단 사람들의 ‘똥개, 여행을 떠나다’는 여전히 민중적 가치를 말한다. 우리는 왜 지금도, 또 어떻게 민중성을 말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1991년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대의 버스’, 2003년 ‘고3 수험생들의 일기’ 등 한강이란 이름으로 불평등의 현실을 고발하는 일련의 무대를 펼쳐온 극단이 개명, 다양한 극적 장치로 이 시대의 음지를 보여준다. 바깥세상이 궁금해 집 떠난 개가 접하는 인간 세상에는 불합리와 불행이 만연하고 있다.
때로 인간이 개팔자보다 못한 세상이다. 직장에서 쫓겨나 신문을 덮고 잠 청하는 노숙인과 맞닥뜨린 개에게서는 사람을 개 신세로 내모는 이 사회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감지된다. 가족에게 돈을 부쳐야 한다며 남편을 닦달하는 동남아 출신 부인에게서 다문화 가정의 고민이 물씬하다.
남편이 미는 휠체어에 실려 나들이에 나선 뇌성마비 부인을 연기하는 윤보경(32ㆍ사진)은 배우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그 같은 연기를 선보였던 문소리는 카메라 렌즈의 시선이 딴 곳을 향할 때, 근육의 긴장을 늦추었을 것이다. 딴 배우들의 연기에 객석이 시선이 몰려 있는 때라도 그는 그렇게 체득한 몸짓과 얼굴의 경련을 잠시도 멈추지 않는다. 이번 무대를 위해 “뇌성마비 친구를 찾아가 한잔 했다”는 그는 “뮤지컬 일변도로 변한 대학로에, 이런 연극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선입견을 깨고 싶다”고 말했다.
연극은 마당극 형식을 실내극장으로 데리고 온다. 장구 치며 사설을 읊어대던 배우는 대사를 잠시 멈추고는 관객 몇 명을 불러낸다. 무대에서 라면을 끓여 소주를 한 잔씩 돌리며 취직 이야기 등 시시콜콜 말을 주고 받는다. 이 극단이 축적해 온 마당극적 역량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 굉음이 이 곳에 엄존하는 사회적 루저들을 가릴 수는 없다. 이 연극은 시대가 외면한 그들의 이야기가 개의 시선으로 볼 때 더 자연스럽다는 기막힌 현실을 주장한다. 7개장으로 분할된 마당극 버전 옴니버스 연극이라는 구성 방식은 그 주장을 떠받치는 미학적 전략이다.
이 극단은 고3 수험생들을 위한 무료 공연, 장애인 극단 운영, 문화 소외 지역 공연, 정리 해고 문제를 위한 기획 공연 등으로 나눔의 시간을 쌓아오고 있다. 11월 28일까지 상상아트홀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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