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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극단의 선택 자살] (1) 자살충동 왜 막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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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극단의 선택 자살] (1) 자살충동 왜 막지 못하나

입력
2010.10.1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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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死後 안타까워만 할뿐… 속 터놓고 보듬을 '보호막' 없었다

박진주(50ㆍ가명)씨는 올 겨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주위에선 이해하지 못했다. 자상한 성격의 성공한 남편, 번듯이 자란 20대 아들. 단란한 가정의 주부였다. 가족과 수사당국은 30년 남짓 앓아온 박씨의 우울증을 자살의 이유로 지목했다. 그의 죽음은 정말 막을 수 없었나. 주변의 증언을 토대로 구성한 박씨의 사연을 그의 목소리로 옮겨봤다. 각 단락에 등장하는 ()는 박씨의 자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나는 밝은 성격이었다. 결혼한지 3년 만에 살이 많이 쪘다. 거울 보는 일이 겁났고 다이어트 약을 먹기 시작했다. 4~5년을 먹어도 체중은 그대로였다. 보는 사람마다 물었다. "왜 그리 살이 쪘느냐"고. 차츰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졌다. 오로지 남편과 아이만 있는 집이 제일 편했다. 가족에겐 약을 먹는 것도, 내 기분도 감췄다. 결혼 10년째 되는 해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혼자 극복하려 했지만 불면의 밤이 늘었다. 남편과 병원의 권유로 결국 7년간 세 차례 입원했다. 세 달 입원 후 퇴원, 두 달 입원 후 퇴원, 한 달 입원 후 퇴원…. 약물치료는 그런대로 효과가 있었다. 증세가 호전돼 작년부터는 집에서 가족과 병을 극복하려 했다. 병원이 싫어 가족과 스포츠센터를 다녔다. 그래도 때로는 "죽고 싶다" "뛰어내리고 싶다" "내가 없어야 아들이 행복할거다"고 말했다. 가족의 위로는 힘이 됐지만 그들이 잠시라고 곁을 비우면 나는 방황했다. 친구도 직장도 없는 내가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거의 매주 "죽고 싶다"고 말하는 시기가 늘었다. 그러나 덮어두는 게 나을 줄 알고 정작 '자살'이란 말은 그 누구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가 이때 정신보건센터 상담을 받았다면)

혼자 남은 겨울 낮 시간. 걷기라도 해야겠다 싶어 근처 공원에 갈 참으로 집을 나섰다. 문득 다시 생각했다. '나만 없으면….' 처음부터 그럴 마음은 아니었지만 근처 건물 옥상으로 향하는 길까지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은 없었다. 울타리나 철조망이 없는 난간은 높지 않았다. 두려웠다. 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 가족에게 짧은 글을 썼다. '미안하다. 모든 것을 맡긴다.' (옥상관리 지침이 있었다면)

다시 두려웠다. 떠오르는 모든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한창 바쁠 시간인 탓인지 전화 받는 이는 없었다. 막막했다. 이럴 때 어디에 전화를 해야 할지도 왜 미리 알지 못했나 자신을 탓했지만 모든 게 싫고 귀찮아졌다. 친구도 조언자도 만들지 못한 못난 삶이다 싶었다. (전문가나 자살충동상담 전화번호 알았다면)

그렇게 박씨는 숨졌다. 그의 빈소에서 남편과 아들은 죄책감에 절규했다. 박씨가 떠난 후 둘은 불면증, 자살충동, 절망에 시달린다. 죽음으로 삶의 고통을 위로 받고 가족을 편하게 해주려 했던 박씨가 가족에게 남긴 유산은 아이러니하게도 박씨 본인도 헤어나지 못했던 바로 그 지긋지긋한 고통이었다. (남겨진 가족의 고통을 미리 알았더라면)

안타깝게도 박씨는 이제 더는 자신의 선택을 돌이킬 수 없게 됐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자살 고위험군' 대책없이 방치

경기 양주시의 모 고교 2학년생인 A(17)군은 지난해 3월 가족과 친구들에게 "공부하는 게 힘들다.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했다. 하지만 이들은 A군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학교 때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던 A군이 고교에서 성적이 오르지 않아 고민하는 정도의 공부스트레스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A군은 1주일 뒤 가장 절친했던 친구에게 '잘 살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징후나 예고를 동반하지 않는 자살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힘들다""죽고 싶다"는 표현, 평소와는 다른 행동이나 우울한 기분 등이다. 하지만 가족이나 지인, 사회, 나아가 국가가 소리 없는 신호를 무시하거나 방치하고 있는 게 자살폭증의 원인이다. 5년 전 한 차례 이혼의 아픔을 겪은 이화진(35ㆍ가명)씨는 두 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강한 경고음을 주위사람에게 냈지만 적절한 보호를 받지 못한 채 "다음 생에는 구설수 없이 살고 싶다"는 유서를 남기고 결국 지난 7월 생을 등졌다.

노년층이나 충동적인 자살을 저지르는 10대, 자살 시도자나 유가족 등 이른바 '자살 고위험군'에 대한 선제적 대응책이 없다. 이러다 보니 실질적인 자살률 감소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 자살자 수는 1만5,413명. 하루 평균 42.2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있지만 이들의 삶을 붙잡을 공동체와 정부의 대책은 답보 상태나 다름없다. 특히 가족이나 친구 등 가까운 사람의 자살은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가져와 자살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위험도 있지만 이들에 관심과 정신적 치유노력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 자살예방협회 윤대현 이사는 "한 사람의 자살이 가족이나 동료, 친구 등 가까운 사람 6명에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말했다.

한 70대 노인은 최근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상담전화 '블루터치핫라인'(1577-0199)에 전화를 걸어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 하나 없어지면 애들이 편할 텐데…"라고 고백했다. 특히 노년층 자살에는 "나이가 들어 그런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위의 무관심이 크게 작용한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노인은 특성상 자살 계획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경우도 적고 젊은 성인에 비해 자살시도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3~5배 높다"고 지적했다.

10대들은 충돌자살의 위험으로부터 거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로가 최근 공개한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의 중1~고3 학생 7만5,238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18.9%, 최근 12개월 동안 자살을 시도했다는 대답도 4.7%나 됐지만 이들에 대한 보호노력은 사실상 가정수준에 머물러 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정신보건센터, 보건복지부의 콜센터, 생명의 전화 등 상담과 응급 출동을 병행하는 상담기관들이 곳곳에서 생겼지만 적극적인 방어막이 되지 못하고 있다. 생명의 전화 관계자는 "보다 적극적인 예방을 위해서는 경찰서와 병원, 정신보건센터 등 유관 기관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사고발생 전에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자세 역시 안일하다. 자살문제와 관련, 보건복지부, 교육과학기술부, 여성가족부 등이 총체적 대응책을 내놓아도 시원찮을 판이지만 각개로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정책의 중복과 정보교류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산이라고 해야 복지부가 생명존중정신건강사업에 7억3,000여 만원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자살예방 상담 및 자살예방 활동 지원에 6억 원을 배정한 정도다. 한 자살예방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국가자살예방 5개년 계획이란 것을 만들었지만 예산은 전혀 편성되지 않은 말뿐인 정책"이라며 "자살 예방 활동 책임을 사실상 민간에 미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김혜영기자 shine@hk.co.kr

■ 자살 이유는… 노인은 궁핍·상실감에… 10대는 충동·모방

서울 시내 65세 이상 노인 자살사망자 수는 2000년 138명에서 지난해 578명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전국의 70세 이상 자살은 2005년 2,346명에서 2009년 2,977명으로 늘었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 등으로 인한 상실감, 고립상태에서 우울감을 겪다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경제적 어려움도 노인 자살과 뗄 수 없는 문제다. 2008년 서울시가 65세 이상 5,0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24.1%는 소득이 없다고 했고 29.4%는 월 50만원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10대 자살의 경우 다른 연령대에 비해 교내 따돌림, 학업부담 등에서 비롯되는 충동적인 자살이 많고 유명인 등이 자살했을 때 따라 목숨을 끊는 '베르테르 효과'도 자주 나타나는 양상이다. KOSIS에 따르면 2005년 279명이던 전국의 10대 자살자는 해마다 증가, 지난해 446명까지 늘어났다.

한편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3개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은 11.2명인데 비해 한국은 배 이상 많은 28.4명을 기록, 2003년 이후 8년째 1위를 기록하는 오명을 남겼다.

이성기기자 hang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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