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름 덮인 손이 바삐 움직인다. 탁자에 탁자보를 깔끔하게 펼치고, 그 위에 고급 접시를 올려놓는다. 집안 이곳 저곳도 말끔히 정리된다. 오래도록 손꼽아 기다린 기쁜 날을 위한 손놀림인 듯하다. 커피메이커가 향긋한 김을 내뿜으며 커피를 뽑아낸 지 얼마 되지 않아 관객의 예상은 빗나간다. 정갈하게 음식을 장만하던 손의 주인공은 더 이상 이승의 몸이 아닌 채 전 남편에 의해 발견된다. 마지막 가는 길을 스스로 택한 여인의 이름은 노라. 영화 ‘노라 없는 5일’은 한 여인이 자살로 세상을 떠난 뒤 남겨진 자들, 특히 전 남편 호세가 보내는 5일을 묵묵히 바라본다.
호세는 덤덤히 노라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습관적으로 자살을 기도해 온 옛 아내였기에 그는 “우려했던 일이 결국 벌어졌다”며 아들에게 전화 메시지를 남긴다. 죽음을 앞두고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 음식을 장만하고 간 노라에게 은근히 부아가 치밀기도 한다. 노라가 실수로 흘린 옛 사진도 그의 감정을 더욱 출렁이게 한다. 노라가 함께 살던 시절 다른 남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으리라는 추측에 호세의 마음은 흔들리며 결국 장례 절차를 협의하러 온 랍비에게도 무례한 언행을 저지른다.
‘노라 없는 5일’은 맑은 다슬기 국과도 같은 영화다. 자극적인 양념도 없고, 인공조미료의 역한 맛도 나지 않는다. 한 여인의 자살이 있고, 감정의 파국을 부를만한 갈등이 뒤따르지만 인물들의 격정이나 회한이 스크린을 휘감진 않는다.
특히나 인생의 하류에 다다른 호세의 감정은 격하게 굽이치기보다 잔잔하면서도 조금 빠르게 흐른다. 친구이자 아내의 주치의였던 알베르트가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으리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포착한 뒤에도 그의 얼굴엔 작은 떨림만이 있을 뿐이다. 노라의 비밀과 진실을 알게 된 뒤의 호세의 선택도 담담히 전해진다. 끝내 육신 밖으로 터지지 않는 분노와 미움은 노라에 대한 호세의 쌓이고 쌓인 애증을 되려 농밀하게 전달한다. 자살했다는 이유로 유대교 계열 묘지로부터 매장을 거부 당한 아내의 안식을 위해 자신의 묘 자리를 내놓는 장면에 콧등이 시큰해지는 이유이다.
노라가 남기고 간 음식은 결국 장례를 위해 이리저리 애쓴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며 이들의 서먹했던 관계를 이어준다. 살아 남은 자를 향한 죽은 자의 예의와 배려가 느껴지는, 이 영화의 온기를 더욱 높이는 대목이다. 멕시코의 신예 여성 감독 마리아나 체닐로는 이 영화로 지난해 모스크바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