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 산업 급물살 "세계로 노 저어라"
2008년말 기준 우리나라의 상수도와 하수도 보급률은 각각 92.7%와 88.6%다. 일부 농촌이나 산간을 제외하면 대부분 지역에 보급이 완료된 단계. 1970년대만 해도 우물에서 물을 긷고 오수를 하천에 그대로 버리던 걸 떠올리면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른 발전 속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구축 속도가 빨랐던 것이 최근에는 관련 업계에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인프라 투자가 포화상태에 도달하면서 자연스레 해외시장 개척이 생존을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국내 대부분 업체가 유럽계 기업이 선점한 세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자원공사-IT 활용ㆍ수질 강점
물 분야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은 단연 한국수자원공사다. 67년 공사 출범 이후 43년간 ‘한우물’을 파온 경험에서 나오는 기술과 노하우가 강점이다. 또 국내에서는 사실상 유일하게 수자원 시설의 건설부터 운영 및 관리에 이르는 전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도 비교 우위다.
실제로 베올리아(프랑스) 등 세계 선두권 기업과 비교하면 전반적 기술력은 60~80% 수준이지만, 일부 분야에서는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상태인데 정보통신(IT) 기술을 활용한 자동화 운영 분야가 그 중 한가지. 과거에는 개별 정수장에서 별도로 수질 관리를 해 왔지만, 이제는 통합 전산망을 구축한 권역별 센터에서 광역 수질 관리를 하고 있다. 사업비가 절감되고 광역 공급 관리가 쉬워지고 유사시 대처 능력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미국수도협회에서 최고 등급(별 다섯개)을 인정받은 수질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아시아, 아프리카 저개발국을 상대로 한 수자원공사의 해외 진출도 속도가 붙고 있다. 올해까지 18개국에서 30개 사업을 완료했고, 현재는 9개국에서 10개 사업을 수주한 상태다.
수자원공사는 과거 본격적인 사업 수주보다는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타당성 조사나 시공 감리 등의 업무를 주로 맡았으나, 최근에는 건설 및 운영관리 분야로 진출 영역을 넓히고 있다. ODA 차원이 아닌 해외 직접 수주 빈도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3억3,000만 달러 규모의 파키스탄 파트린드 수력발전소 사업을 수주했는데, 150㎿급의 수력발전소를 건설해 30년간 운영하는 대규모 민자 프로젝트다.
담수화ㆍ필터 기술도 세계 수준
민간 업체도 해외 물 시장을 잡기 위해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부 민간업체는 이미 설계나 시공 능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해수담수화 사업은 세계 수준에 근접한 상태인데, 이 분야에서는 두산중공업이 시장 점유율 1위(증류식ㆍ40%)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동에서만 56억 달러 규모의 담수화 플랜트 공사를 따냈다. 또 물의 재이용이나 담수화에 쓰이는 필터막(멤브레인) 분야에서 다우케미칼(미국)과 도레이(일본)에 이어 세계 3위권의 기술을 보유한 웅진케미칼도 돋보인다.
물론 이처럼 개별 분야에서 내세울 만한 기술은 있지만, 시공ㆍ운영ㆍ관리 등 기술 영역과 자금 확보(파이낸싱) 능력이 결합된 종합 서비스 역량은 여전히 미흡한 게 현실이다. 세계 물 산업 분야에서 이같은 ‘토털 솔루션’이 대세로 자리잡았다는 점에서도 ‘구슬을 꿰 보배로 만드는 작업’은 절실하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물 산업 육성전략’에서 ▦2020년까지 베올리아 수준의 세계적 물 기업 8개를 육성하고 ▦산ㆍ학ㆍ연을 연계한 물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수립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정부는 또 공기업과 민간기업의 컨소시엄 구성도 활성화할 방침.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민관 협력을 활성화해 수주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건설협회에 별도의 센터를 설립해 관련 수주 지원 및 정보를 제공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현재 우리나라의 '물(상수도) 사업'은 164개 지방자치단체가 개별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지방 상수도 경영 환경은 너무도 열악하다.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기는커녕, 수돗물 생산비를 충당하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지자체 10곳 중 6곳 이상은 급수인구가 10만명 미만. 급수인구가 30만명이 넘는 곳은 18%에 불과하다. 당연히 1인당 생산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생산원가 대비 수도요금은 전국 평균이 83.4%에 불과하며, 특히 전북 순창군은 그 비율이 25.2%에 그치고 있다.
수돗물을 생산하는데 100원이 들어간다면, 거둬들이는 수도요금은 25원으로 만성 적자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상수도 사업의 구조적이면서도 만성적 적자는 가뜩이나 열악한 일선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를 악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수도 서비스의 도농간 양극화도 극심하다. 농촌의 면 단위 행정구역에서는 급수 보급율이 47.4%에 불과해 대도시(99.3%)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생산원가의 지역간 격차도 최대 6배가 넘는다. 수도시설 중복투자로 인한 국가적 낭비, 책임 경영과 전문성 확보 미흡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결국 해법은 과감한 통ㆍ폐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 실현. 정부가 이번에 '물 산업 성장전략'을 통해 지방 상수도를 2020년까지 39개 권역으로 통합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경영은 한국수자원공사나 한국환경공단 등 공기업에 위탁하고, 민간기업은 이들 공기업과 컨소시엄을 통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어느 정도 규모가 돼야 적극적 투자와 기술 개발을 기대할 수 있다"며 "정부는 민간기업이 반드시 공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뒤 상수도 사업에 진출하도록 규정해 한때 제기된 '수돗물 괴담' 논란을 차단했다"고 말했다. 열악한 지방 상수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물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선결과제라는 얘기다.
이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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